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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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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존중 유입 키워드 1위를 공개합니다 [사정 방지링] 그리고 [켄택] 입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키워드 연성을 해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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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속에 파묻혀 몸을 뒤척이던 남자는 팔을 뻗어 탁상 위를 더듬었다. 좀처럼 손에 닿지 않는 핸드폰이 경박한 알림 소리를 내며 울었다. 감은 눈으로 탁상을 더듬어 핸드폰을 손에 쥔 남자는 감았던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눈을 떴다. 남자의 하루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남자는 잠이 가시지 않은 듯 연신 미간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쥔 손을 느리게 움직였다. 가장 먼저 보이는 화면 위로 그 달의 스케줄이 떠 있었다. 7월의 첫째 주. 붉게 적힌 숫자 아래는 아이의 생일이 있었다. 남자는 방안에 앉아 집안을 조용히 움직이는 인기척을 들었다. 그리고 멀지않은 욕실에서 흐르는 물소리도.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정확히 8년 전에 끊었다. 그는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그날 이후로 하지 않게 된 것들에 대해서 ..
주머니는 두둑하고 양 손은 한 없이 가볍다. 나날이 유명해지는 학연의 솜씨는 입소문을 타고 퍼졌다. 떡을 사기위해 아랫마을에서 왔다는 넉살좋은 아낙의 수다스러운 칭찬에 학연은 새침하게 웃었다. 내가 또 한 손맛 하지. 인심 좋게 꿀에 절인 깨가 듬뿍 들어간 송편을 두어 개 더 얹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껴야 산다는 옛 선조의 깊고도 심오한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사는 학연이 주머니를 여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것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던 아우인 상혁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그런 그가 상혁이 사달라 조르는 비빔밥에 도토리묵까지 덤으로 주문해 대접할 정도로 요즘 학연은 엽전 긁어모으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철쭉아. 너도 짐이 적으니 좋지?” 분홍 꽃이 피는 봄에 태어나 꽃 이름을 붙여주었다. 저가 ..
덕유산은 산이 높고 계곡이 깊으나 산세가 험하지 않아 유한 성정을 가진 산으로 알려져 있다. 홍빈은 나무 둥치에 짐을 내려놓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천에 색색으로 물든 낙엽이 비단처럼 산을 휘감고 있었다. 특히 나무와 바위가 많아 작은 짐승들이 터를 잡고 살며 귀한 약초들이 많이 자라기로 유명했다. 가을의 풍성함을 그대로 간직한 덕유산은 특유의 인자하고 넉넉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솜이 덧대어진 가죽신을 신은 홍빈은 푹신하게 쌓인 낙엽을 장난스럽게 밟으며 걸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게 된 풍경이었다. 하늘도 유난히 푸르고 높게 보이는 이곳은 공기마저 다른 듯 코끝 가득 스미는 나무향기에 홍빈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짐을 풀자마자 낙엽더미 속에서 선명하고 색이 아름다운 단풍잎을 하나씩 주우며 돌아다니..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자정.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잠에 들었던 원식은 감았던 눈을 떴다. 이부자리를 걷고 부스스 몸을 일으켜 앉아 졸음이 가득한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눈을 감았을 때와 떴을 때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어두운 새벽이었다.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원식은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문고리에 힘을 주고 조심스럽게 밀어내자 나무틀이 서로 부대끼며 삐걱댔다. 원식은 대청마루에 발을 디딘 체 밀려오는 서늘한 새벽공기를 쫓으려 기지개를 켰다. 온 세상이 잠에 빠져든 늦은 새벽이었지만 원식은 뻐근한 몸을 민첩하게 움직였다. 어깨를 이리저리 돌리던 원식은 물을 저장하는 장독뚜껑을 들어 올려 그 속에서 물을 퍼 올렸다. 하루 종일 땡볕은 받은 장독 안에 물은 미지근한 온도로 식어있었다. 홍..
여우구슬이 사라졌다. 홍빈은 벌렁벌렁 뛰는 가슴께를 떨리는 손으로 꾹꾹 눌러 내렸다. 여우구슬이 사라지다니……. 홍빈이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긴장으로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보아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덕을 쌓아 구슬이 탁해지지 않게 천년동안 간직해야만 비로소 인간이 되거나 신의 반열에 오르는 자격이 주어지게 되는데, 그 여우구슬이 없다면 평생 요물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홍빈은 돌아가신 주지스님의 마지막 말씀이 떠올라 더러워진 옷자락을 찢을 듯 움켜쥐었다. 눈물이 뿌옇게 서려 시야를 가렸다. 커다란 눈물방울이 이미 더러워진 홍빈의 낡은 옷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여우구슬이 없다면 다음 보름을 넘기기도 전에 본래 모습인 여우로 변할 터였다. 질끈 감은..
남자의 의식이 천천히 돌아오고 있었다. 원식은 그 느리고도 조용한 과정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말간 미간이 찡그려지고 긴 속눈썹이 잘게 떨린다. 눈꺼풀 속에 감추어진 새카만 눈동자가 드러나는 순간은 경이로웠다. 원식은 처음 홍빈을 발견한 날을 떠올렸다. 분명 여인이라 의심치 않았던 가는 몸매와 얇은 허리 그리고 작은 손발까지. 사내의 옷을 입은 그가 상상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어찌하여 여인의 옷을 입고 산에 쓰러져 있었는가. 의문이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작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척이는 홍빈에게 시선을 주던 원식은 이것을 가슴속 깊이 묻어두기로 했다. 이유를 안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원식은 타인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으로 만족감이나 우월함을 느끼는 부류들을 경멸했다. 어찌되었건 복..
더 늦기전 산을 넘겠다 고집을 부린 것이 화근이었다. 아프게 뛰는 가슴을 주먹으로 눌러 내리던 홍빈은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산중턱을 넘었을 즈음이었다. 서너 명의 사냥꾼들이 여장을 한 체 산을 오르던 홍빈의 앞길을 막아섰다. 여인의 몸으로 늦은 밤 홀로 길을 나서는 그를 의심스럽게 여긴 것이었다. 숲속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홍빈의 발치에 굵은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겨우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곧 따라잡힐 것이 분명했다. 허나 멈추면 죽는다. 피 냄새를 맡고 흥분한 까마귀 떼의 울음소리가 산을 뒤흔들었다. 산을 오르는 것인지 내려가는 것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사방이 캄캄하게 내려앉았다. 홍빈은 비틀거리는 몸을 추스르기 위해 나무에 등을 기대어 숨을 골랐다. 얼마만큼의 ..
그것은 아주 기묘한 감각이었다. 연초록빛 커튼 사이로 햇살이 강하게 비쳐들고 있었다. 몸이 녹아내린 것처럼 나른했다.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커튼 사이로 비친 햇빛이 감은 눈을 집요하게 찔러댔다. 몸을 일으키자 약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몽롱한 머릿속에 붉은 경고등이 일렁인다. 자신은 처음 보는 장소에 있었다. 마치 모델하우스에서나 볼법한 새하얗고 안락한 방. 때문에 홍빈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꿈인지 아님 현실인지 잘 구분이 가질 않았다. 그저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려 커다란 눈을 감았다 뜨길 반복할 뿐이었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어젯밤 나는 죽었다. 죽는 순간의 공포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홍빈은 가만히 생각했다. 혹시 어젯밤 일이 꿈이었던 걸까. 홍빈은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의구심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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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상조 (간 간, 쓸개 담, 서로 상, 비칠 조) [ 肝膽相照 ]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인다는 뜻. 친구 사이의 眞正(진정)한 우정.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가까이 지냄.] “피지 마.”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순간 쫄았다. 학연은 재킷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찾다말고 택운을 바라봤다. 무섭게 진지 빨고 그르냐 인마. 한 동안 점심시간에 안 보인다 싶더니 오늘은 가장 먼저 옥상에 올라와 있다. 학연은 어느새 의욕 없는 표정으로 돌아간 택운의 눈을 피해 육중하게 닫힌 옥상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급식실까지 최단거리를 자랑하는 학연의 교실답게 급식도 먼저 받는 편이었다. 그래서 학연은 누구보다 빠르게 점심을 해치우고 가장 먼저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옥상 가장 먼저 올라가기 놀이에 열나게 심취해있던 학..
꼭 두 사람만큼의 온기로 데워진 이불속에서 가만히 몸을 뒤척였다. 모처럼 편안하게 잠에서 깬 택운은 눈도 뜨지 않은 채 익숙한 동작으로 탁자 위를 더듬어 아직 울리지 않은 알람시계를 눌러 껐다. 가슴위에 묵직하게 얹힌 학연의 팔뚝을 가만히 어루만지자 잠결에도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인다. 이불 밖으로 드러난 맨 어깨 위로 어슴푸른 새벽빛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흘렀다. 게슴츠레 창밖을 살핀 택운은 피부에 닿는 서늘한 공기를 느끼며 덮고 있던 이불을 끌어올려 드러난 학연의 어깨를 감쌌다. 고요하고도 평온한 아침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택운은 이불 아래로 손을 뻗어 학연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손바닥에 감기는 매끈한 피부는 아직까지 밤새 나누었던 열기를 머금고 있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가만히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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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이재환x이홍빈 시팔. 무슨 교양과목이 이렇게 빡센 거야. 생각을 해도 짜증이 나는 듯 재환이 거칠게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진짜 거저먹는 학점이라며 이빨을 까던 여자 후배의 말을 믿은 게 잘못이었다. 선배 진짜에요. 진짜 쉽데요. 2장짜리 레포트 두개, 기말시험 하나 보면 끝이라니까요? 컴엔지 하는 제 친구 박경 알죠. 박경 걔가 저번 학기에 그 과목 들었는데 에이쁠 받데요. 진짜 쉬운가봐요. 걔 레포트 완전 젬병인데. 에이쁠은 개뿔. 재환은 첫 수업부터 홀로 안드로메다를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박경은 에이쁠을 받았다니 머리를 쥐어뜯으며 분노하던 재환은 개나 줄래도 찾아 볼 수 없는 자신의 예술 감각을 탓해야했다. 은재 후배한테 부탁해서 박경 레포트나 뜯어와야겠다. 재환이 인상을 쓴 채 교양과목을 추..
하루 중 가장 나른하다는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사무실 안으로 햇볕이 비스듬하게 내려앉아 눈이 부셨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해를 볼일이 없는 원식은 눈이 부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버티칼을 내리지 않고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던 참이었다. 서류에서 눈을 뗀 원식은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간단한 점심을 먹고 서늘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앉아있으니 머리가 무거워 지는 것이 어쩔 수가 없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사무실 한곳에 머무른다. 영업기획부 1년차 한상혁 사원이 앉아있는 자리였다. 잠시 고민을 하던 원식은 잔이 빈 머그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너무 많이 마시면 얼굴 까매져, 원식씨!” 영업기획부 부팀장 재환이 탕비실로 가는 원식의 등 뒤에 대고 한 소리였다. 물론 그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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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졸업인데. 무슨 이유라도 있나?” “아니요, 그런 건 없습니다.” 걱정스러운 담임교수의 목소리에 자꾸만 시선이 문 쪽으로 향한다. 이런 불필요한 친절은 부담스럽다. 택운은 인생의 타이밍에 관해 논하는 교수의 얼굴 앞에 종이를 들이밀고 싶은 충동을 조용히 참았다. 밤낮없이 불면증으로 침대를 뒤척이게 만들던 열대야가 물러가고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가디건을 걸쳐야 할 만큼 서늘해졌다. 어거지로 교수의 도장을 받아 휴학신청서를 낸 택운은 제법 쌀쌀한 공기에 어깨를 움츠리며 학교 정문을 나섰다.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원래 택운은 결정을 내리고 행동에 옮김에 있어서 깊게 생각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벌써 소문이 돌았는지 택운의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미련 없이 핸드폰을 끈 택운은 집으로 가던 방..
춥다. 학연은 마른기침을 하며 입고 있던 가죽 재킷의 깃을 여몄다. 추위로 움츠러든 학연의 어깨가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이동하는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돌아가던 히터에 노곤하게 풀렸던 몸이 밖을 나서자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방송국. 연습실. 그리고 숙소와 차안. 학연은 겨울이 이리도 성큼 다가섰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바깥 공기를 느낄 조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스케줄 때문이었다. 계절도 날씨도 일상과는 조금씩 멀어지는 그런 삶. 이렇게 매일같이 전쟁터 속을 헤매는 기분으로 살게 될 줄 그때는 알았을까. 학연은 금세 서늘하게 식은 손을 재킷 안으로 애써 우겨넣었다. 얼어붙을 듯 차가운 밤공기가 자신의 기분까지 상쾌하게 돌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은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목..
Amore by. Ryuichi Sakamoto 클릭하면 재생됩니다
#겟잇뷰티 "...피디님 제가 정말 말주변이 없어서..." "괜찮아, 택운씨. 우리 엠씨가 보통이 아니거든. 다 커버해줘. 택운씨가 한마디만 해도 그냥 줄줄 읉어준다니까." "근데 저 진짜..." - 자, 그럼 러블리 메이크업의 트랜드셋터 정택운 메이컵 아티스트님 모셔볼까요? 쇼프로에서 10초 이상 정적이 흐른다는건 대형 방송사고 감이라며 잔뜩 겁을 주던 재환의 목소리가 머리속에서 무한재생 중이었다. 진행자의 멘트가 끝나자마자 스튜디오 석에서 열렬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택운님 나가실게요! 쨍한 스텝의 목소리가 택운의 귓가에 귀곡성처럼 울린다. 긴장으로 까무러치기 직전인 택운의 얼굴이 벌써부터 하얗게 굳었다. 무표정한 얼굴과 긴장으로 상기된 두 볼은 매우 기괴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좀처럼 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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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엔] a. 오또카지 사과 박스만큼이나 커다란 상자들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서점 입구에 차곡차곡 쌓였다. 까만 뿔테안경을 코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학연이 미간을 잔뜩 모은 체 주문서류에 적힌 목록을 빠른 속도로 훑었다. 볼펜을 들고 주문서류에 사인을 하는 학연의 모습을 멍하게 구경하던 재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아한 얼굴에 작게 찌푸려진 미간이 금욕적이었다. 멀찍이 학연이 일하는 모습을 훔쳐보던 재환은 미칠 것 같았다. 반쯤 걷어 올린 셔츠 소매 사이로 드러난 모카색 손목에 동공을 박제한 재환이 마른침을 삼키며 입맛을 다셨다. 사장님 직업 환경이 너무 위험한 것 같습니다. 방해요소가 이렇게 많은 줄 알았으면 진작부터 일하러 오는 건데. 감사합니다아리가또세세. 대낮부터 빨간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상상을 하..
핸드폰에 저장된 김변태의 이름을 바꾼 이유 김원식x한상혁 나는 안대를 끼고 자는 버릇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때 생긴 습관은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도 쭉 이어졌다. 지금도 조금이라도 잠을 설칠 것 같다 싶으면 제일 먼저 찾는 잇템이 되어버렸으니까. 문제는 원식이 형과 함께 살면서 생겼다. 머리만 바닥에 닿았다 하면 잠이 드는 형의 사전에 잠을 설친다는 단어가 있을 리 없었다. 형은 침대에 누워서 사색에 잠겨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빵 터져서 웃었다. 생각이란 걸 할 시간도 없이 잠이 든다는 뜻이었다. 솔직히 나도 어디서 잠자리 가린다는 소리는 들어 본적이 없는데, 형에 비하면 나는 완전 까탈스러운 여고생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였을까. 원식이 형은 내가 안대를 끼고 잔..
[택엔] 두 입술 사이 거리는 아직 "괜찮으세요?!" 택운은 정말 괜찮았다. 의식도 있었다. 단지 너무 쪽팔려서 눈을 뜨지 못했을 뿐. 안되겠다. 인공호흡 해야겠어. 귓가에 카랑카랑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택운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물에 젖은 말캉한 입술이 택운의 입술에 닿았다. 분명 남자 목소리였는데. 그런 것을 따지기엔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택운은 물에서 건진 고목나무처럼 뻣뻣하게 누워 인공호흡을 받았다. 택운은 중학교 때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다.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었고 축구를 그만둔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택운은 자신의 운동신경은 좋은 편이라 굳게 믿었다. 그리고 오늘. 믿었던 도끼가 택운의 발등을 신나게 후려치고 사라졌다. 운동신경은 개뿔. 택운의 턱을 단단하게 ..
1. “허리 주물러줘?” “저리 꺼저.” 적당히 하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분명 메이크업과 세팅한 머리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빌어먹게 몸케미만 좋아가지 정신을 차려보니 침대 위라 학연은 기가 찼다. 뒤로 하면 된다며 뻔뻔한 얼굴로 옆구리를 지분댈 때 알았어야 했다. 옆구리는 학연의 성감대였다. 눈치 없는 정택운은 그런 것만 귀신같이 알아챘다. 개운한 표정으로 화장실에서 나온 택운은 타월 한 장을 허리에 두른 체 냉장고를 뒤져 음료수를 꺼내마셨다. 모델 같은 포즈로 테이블에 비스듬히 기대선 택운은 침대위에 비스듬하게 기대앉아 오만상을 찌푸리고 앉아있는 학연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는 끔찍하게도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많이 아파?" 학연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낭창하게 되묻는 저 인간에..
물이 흐르는 시간 “안 팔아.” “왜요?” “내 마음이지.” 홍빈은 울상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근데 전화 온 사람이 연예인이래요. 그 왜 막장 수목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 아줌마 있잖아요. 홍빈은 전화기를 손바닥으로 틀어막으며 중얼거렸다. “아줌마고 아저씨고, 안 판다는데 왜 자꾸 난리야.” “그래도...” “시끄럽고. 벨라 밥이나 주고와.” “싫어...” “쓰읍, 까분다.” 학연이 팍 인상을 쓰자 금세 쭈굴쭈굴해진 홍빈이 전화기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이 까라면 까야지. 알바생은 힘이 없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마가 꼈었던 게 틀림없다. 왜 멀쩡한 일자리를 놔두고 여길 왔을까. 목장갑에 비닐장갑까지 꼼꼼하게 장착한 홍빈의 표정이 일분일초마다 짜게 식어간다. 그냥 평범한 물고기 밥은 먹을 수 없..
와사비 WASABI "형! 나 배고파." 밥 맡겨놨나 이자식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밥을 찾는 상혁의 목소리에 원식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수족관에서 뜰채로 펄떡펄떡 날뛰는 자연산 광어 한 마리를 잡아 도마 위에 올린 원식이 미간을 팍팍 찡그리며 사시미 칼을 옆으로 눕혀 광어 대가리를 신나게 두드렸다. 순조롭게 기절한 광어의 꼬리와 지느러미에 칼집을 내자 카운터위에 책가방을 던져놓은 상혁이 고양이처럼 원식의 주변을 살금살금 얼쩡거렸다. “나 주려고?” “참나, 주방 가서 인사하고와.” 저 왔어요오! 주방에서 홀로 음식이 나오는 카운터에 머리를 쑥 들이민 상혁이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하자 주방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여럿 터져 나왔다. 예리한 칼끝의 감각을 이용해 광어의 뼈와 살을 분리하던 원식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