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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센터에서 본문

퍝ㅌ/연성

스포츠 센터에서

밤비v 2015. 11. 23. 01:29

[택엔] 두 입술 사이 거리는 아직 
 


"괜찮으세요?!"

택운은 정말 괜찮았다. 의식도 있었다.  단지 너무 쪽팔려서 눈을 뜨지 못했을 뿐. 

안되겠다. 인공호흡 해야겠어. 귓가에 카랑카랑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택운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물에 젖은 말캉한 입술이 택운의 입술에 닿았다. 분명 남자 목소리였는데. 그런 것을 따지기엔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택운은 물에서 건진 고목나무처럼 뻣뻣하게 누워 인공호흡을 받았다. 


택운은 중학교 때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다.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었고 축구를 그만둔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택운은 자신의 운동신경은 좋은 편이라 굳게 믿었다. 그리고 오늘. 믿었던 도끼가 택운의 발등을 신나게 후려치고 사라졌다. 운동신경은 개뿔.  


택운의 턱을 단단하게 고정한 손에 힘이 들어가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후욱. 폐 속으로 공기가 들어가자 거짓말처럼 들이켰던 물이 뱃속에서 역류했다. 토할 것 같아. 택운은 결국 감았던 눈을 부릅떴다. CPR 수칙 첫 번째. 환자의 턱을 들어 기도를 확보한 뒤 환자의 숨소리를 들으며 인공호흡 2회 실시한다. 잠시 입술을 뗀 남자는 숨을 급하게 들이마신 뒤 다시 택운의 입술을 찾았다. 

두 입술 사이 - 거리는 아직 5cm. 택운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근데 못 참겠어…….

"우욱." 

입술이 닿기 직전 택운은 자신 위에 올라탄 남자의 가슴을 밀치고 몸을 일으켰다. 실로 민첩한 동작이 아닐 수 없었다. 악! CPR을 시도하던 남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에 젖은 타일 바닥을 나뒹굴었다. 몸을 일으킨 택운은 기침을 하며 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코와 입에서 토해낸 물이 줄줄 흘렀다. 

"쿨럭...감...감사합니다."

어느 정도 정신이 들자 민망함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진 남자의 안위 역시 걱정되기 시작했다. 쪽팔려. 준비 운동 없이 까불다가 저세상으로 바이바이 (중국어는 짜이찌엔) 할 뻔했다. 택운은 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을 손으로 훔치며 속으로 다짐했다. 다시는 오지 않으리. 누군가가 건네준 수건은 스포츠센터의 로고가 크게 박혀있었다. 여기 목욕탕 되게 큰데 아쉽다. 탕도 크고 또 때밀이 총각도 친절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 잘 밀어주는데. 락스냄새 폴폴 풍기는 수건으로 얼굴을 문질러 닦은 택운의 코앞에 새까만 손이 불쑥 내밀어졌다. 아까 택운에게 입술을 들이밀던 남자의 피부색과 똑같았다. 

“일어날 수 있어요?”
“네에.......”

홀린 듯 남자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물에 젖어 매끈거리는 모카색 피부. 피부가 모카색이었다. 군살 없는 반듯한 복근과 탄력 넘치는 엉덩이. 얇게 빠진 모카색 허벅지를 눈으로 훑은 택운은 저도 몰래 침을 꿀꺽 삼켰다. 

 


  
[켄홍] 찾았다 내 호갱♬ 내가 찾던 호갱♪ 

 
큼. 홍빈은 목을 한번 가다듬었다. 그리고 깍지를 낀 양손을 데스크 위에 우아하게 올렸다. 그는 잠시 생각하듯 말을 아꼈다. 설득력을 어필하는 연기의 일환이었다. 일 년 동안 앵무새처럼 반복하던 대사는 이미 홍빈의 머릿속에 새긴 듯 정리되어 있었다.    

“원래 기본 한 달에 15만원인데 3개월 회원권은 36만원이거든요. 제가 딱 보면 알죠. 한 달 끊고 일주일 겨우 오실 분인지 꾸준하게 오실 분인지. 하하. 아니 인상이 너무 좋으셔서. 원래 잘 추천해 드리는 상품이 아니거든요. 그럼요. 회사는 한 달씩 끊는 게 이득이죠. 아시지만 원래 헬스는 기본 3개월 해야 효과 보잖아요. 어떤 분들은 모르시더라니까요. 회원님 같은 몸매는 하루 30분씩만 걸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하하. 살 뺄 데가 어디 있어요. 좋아 보이는데. 아니라고요? 하하. 우리 센터 오셔서 조금만 관리하시면 예쁜 몸매 만드실 수 있을 거예요 하하. 그렇죠. 아, 네. 3개월로 하신다구요.” 

나긋나긋하게 쏟아지는 중저음은 묘한 설득력이 있다. 정신을 차리면 이미 홍빈이 내민 3개월짜리 계약서에 홀린 듯 개인정보를 휘갈기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달모양으로 휘어진 눈과 시선이 마주친다. 시원하게 벌어진 입술이 곡선을 그리며 올라간다. 그것은 보는 이의 머릿속에 파란색 이온음료 광고 삽입곡을 자동 재생시켰다. 

 

이제 겨우 5월이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벌써 더웠다. 홍빈은 뒤죽박죽으로 치솟는 낮 최고 온도를 핸드폰 어플로 확인하며 혀를 찼다. 지금도 티셔츠 한 장 입고 돌아다니고 있는데 한여름에는 도대체 무엇을 입어야하는가.  


홍빈이 근무하는 5층짜리 스포츠센터는 전 층에 냉·난방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여름엔 25도, 겨울은 20도. 실내 적정온도를 벗어나는 일은 흔치 않았다. 바깥 날씨가 어떤지 대체로 알지 못했다. 계절과 전혀 상관없는 옷차림을 하고 나타나 직원들을 경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니까 한겨울에 가디건 한 장에 슬리퍼 차림으로 출근한다던가, 혹은 한 여름에 비니를 쓰고 나타난다던가 하는. 

일정하게 유지되는 건물 온도 덕분에 홍빈은 오늘 같은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팔이 긴 티셔츠에 청남방을 껴입었다. 특별히 더위를 타는 체질이 아니기도 했지만 벌써부터 벗어던지기 시작하면 왠지 열대야가 몰아칠 때 입을 옷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최대한 여름을 줄이고 싶은 홍빈 나름의 방식이었다. 물론 그의 옷차림과는 상관없이 날은 더워졌다. 

상담 시작부터 끝까지 웃는 얼굴로 신규 회원의 넋을 쏙 빼놓은 홍빈은 뿌듯하게 웃으며 3개월짜리 계약서를 차곡차곡 정리했다. 홍빈은 요즘 핫 하다는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번 달은 인센티브 좀 받으려나. 보너스 나오면 티켓이나 끊어야겠다. 홍빈은 뮤지컬 배우 덕후였다. 무려 뮤지컬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한지상 배우의 열렬한 남팬. 

월급의 절반을 뮤지컬 티켓팅에 썼다. 거기다 다음 달 그가 출연하는 뮤지컬 티켓팅 날짜까지 확인해둔 참이었다. 6개월짜리 하나만 건지면 공연 두 번 정도는 마음 편히 갈수 있을 것 같은데. 일정한 계약 이상을 달성하면 인센티브가 붙는 시스템이라 날이 풀리는 요즘은 제법 보너스가 들어오는 편이었다. 1년 계약은 좀 어렵겠고. 홍빈은 전산에 입력된 자신의 실적을 체크하며 엄지손톱을 이로 잘근잘근 씹었다. 

“저기...”
“상담 받으러 오셨어요?”
“네. 그...지나가다....”

홍빈은 우물쭈물 말끝을 흐리는 눈앞의 남자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덥수룩한 반곱슬에 두꺼운 뿔태안경. 목 늘어난 티셔츠에 줄무늬 슬리퍼. 위아래로 남자의 옷차림을 누구보다 빠르게 스캔한 홍빈은 간단하고도 명료한 결론에 도달했다. 한 달 치 끊고 일주일 뒤에 발길을 끊는 전형적인 부류. 

“여기 앉으세요. 헬스 경험은 있으신가요?”
“아녀... 어..... 이번에 해보려고....요.”

홍빈과 눈을 마주친 남자는 흠칫 몸을 떨며 말끝을 흐렸다. 동그란 눈은 곱게 휘어 접은 홍빈의 시선을 자꾸만 움찔움찔 피하는 남자를 유심히 바라보던 홍빈의 눈이 전에 없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6개월 하나만 된다면. 뮤지컬 덕후는 시간은 많지만 돈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표 값이 비싸도 너무 비쌌다. 이번 한번만 성공하면. 홍빈의 마음은 이미 OP석 맨 앞줄에 가있었다. 홍빈의 의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system] 새로운 호갱(이)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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