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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나세요 본문

퍝ㅌ/연성

서점에서 만나세요

밤비v 2015. 11. 23. 02:15

 




[켄엔] a. 오또카지



사과 박스만큼이나  커다란 상자들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서점 입구에 차곡차곡 쌓였다. 까만 뿔테안경을 코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학연이 미간을 잔뜩 모은 체 주문서류에 적힌 목록을 빠른 속도로 훑었다. 볼펜을 들고 주문서류에 사인을 하는 학연의 모습을 멍하게 구경하던 재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아한 얼굴에 작게 찌푸려진 미간이 금욕적이었다. 


멀찍이 학연이 일하는 모습을 훔쳐보던 재환은 미칠 것 같았다. 반쯤 걷어 올린 셔츠 소매 사이로 드러난 모카색 손목에 동공을 박제한 재환이 마른침을 삼키며 입맛을 다셨다. 사장님 직업 환경이 너무 위험한 것 같습니다. 방해요소가 이렇게 많은 줄 알았으면 진작부터 일하러 오는 건데. 감사합니다아리가또세세. 대낮부터 빨간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상상을 하던 재환은 흘러내릴 듯 말 듯 한 안경 끝을 손끝으로 고쳐 쓰는 학연을 보며 또 한 번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장님 둄마 섹시해. 


한참을 들여다보던 주문서류에서 시선을 뗀 학연이 누군가를 찾는 듯 서점 안을 두리번거렸다. 그것도 모르고 넋 놓고 학연의 얼굴을 구경하다 얼결에 눈이 마주친 재환의 동공이 당황으로 길을 잃고 흔들렸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던 옛 조상님들의 말씀은 틀린 적이 없었다. 재환과 눈이 마주친 학연이 빙글빙글 웃으며 까닥까닥 손가락을 움직였다. 잘 훈련된 골든 리트리버처럼 쏜살같이 학연의 앞으로 달려온 재환의 귓불이 온통 붉었다. 


“도, 도와드릴까요?”

“이거 같이 들까요.”


손짓 하나로 재환을 소환한 학연은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오마이갓. 재환은 휘모리장단을 20배로 돌린 빠르기로 뛰어대는 심장을 슬쩍 움켜쥐며 어색하게 웃었다. 도무지 감정이 필터링이 안 되는 재환은 입이 찢어질듯 웃으며 서점 입구 쌓인 박스를 번쩍 들었다. 


“어디로 가져갈까요?!”


재환이 우렁찬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학연은 그중 부피가 제일 작은 잡지뭉텅이를 두 손으로 감싸들었다. 


“창고에요.”


망부석처럼 굳은 재환을 뒤로하고 날씬한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 서점 뒤편으로 사라진 학연과 실컷 농락당하고 버려진 재환을 관심 없는 척 몰래 구경하던 홍빈이 분주하게 움직이던 손길을 멈췄다. 사다리 위에서 미세먼지까지 확실하게 잡아준다는 풍성한 타조깃털로 책장의 먼지를 살살 털어내던 홍빈은 아침부터 목격 하게 된 불쾌한 광경에 새삼 기분이 나빠졌다. 



저러라고 고용한 알바가 아닐 텐데. 조용하고 바쁘지 않게 흘러가는, 그야말로 홍빈에게 최적화된 직장에 단 하나 불만스러운 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홍빈은 주저 없이 고용주 차학연을 지목할 것이다. 차학연. 나이 31세. 마성의 게이. 이제껏 학연에게 반해서 갈아치운 알바생의 숫자가 36색 색연필 한 세트보다 많다는 사실을 과연 저 알바는 알고 있을까. 


홍빈은 사장님에게 갓 낚인 신선한 알바생 37호가 언제쯤 잘릴 것인가에 대해 잠시 동안 고민해야했다. 책 정리는 잘 못해도 힘은 제법 좋은 재환을 농노처럼 부리며 온갖 궂은일을 떠맡기던 홍빈은 모쪼록 재환이 오래오래 서점에 붙어있었으면 하고 바랐으나 성스러운 서점에서 불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저렇게 바보같이 굴다 잘리면 난 누구 부려먹으라고? 지적인 인간의 기준에 반하는 재환의 행동거지를 짜증스럽게 구경하던 홍빈이 사다리 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나이스 착지. 소리 없이 바닥에 양 발을 디딘 홍빈은 부디 재환이 서점의 평화로움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라며 먼지떨이 끄트머리로 재환의 어깨를 쿡쿡 찔렀다. 거, 너 코피 나는데.


주룩 흐르던 코피는 재환의 발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급하게 손으로 흐르는 코피를 수습하던 재환이 홍빈을 향해 울상을 지었다. 


“손수건 없어?”

“어헣…… 네.”


고개를 뒤로 젖힌 재환이 맹맹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방을 잘 안 들고 다녀서요오……. 홍빈이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수건도 안가지고 다니는 미개인을 내가 실제로 보다니! 순수하게 감탄한 홍빈은 앞치마 속에서 휴대용티슈를 통째로 뽑아 재환의 얼굴에 뿌리듯 건넸다. 거맙습니당. 쩔쩔매며 휴지 뭉텅이로 코를 틀어막는 재환을 보던 홍빈은 오늘밤 당장 알바지옥에 구인구직광고를 올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장님, 이번 알바는 이상한 것 같아. 


“어머! 재환씨!”



창고에서 돌아온 학연이 깜짝 놀라 달려오자 재환은 얼굴을 붉히며 화장실로 줄행랑을 쳤다. 세면대 위로 쏟아지는 물을 얼굴에 철썩철썩 끼얹은 재환은 뚝뚝 떨어지는 시뻘건 피를 찬물에 씻어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코피까지 쏟다니. 근데 사장님 얼굴 보면 또 코피 날 것 같아. 어떡하지.







[혁콩] b. 그놈 목소리



월간 베스트셀러로 구분된 책들을 하나하나 책장에 진열하던 홍빈은 갑자기 조금씩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느끼곤 불안한 표정으로 엄지손톱을 물어뜯었다. 내가 왜 이러지……. 초조한 얼굴로 핸드폰을 꺼내들어 시간을 확인하자 핸드폰을 살 때부터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은 스마트폰의 배경화면은 21시 26분을 알리고 있다. 입술을 깨물던 홍빈은 건강관련 서적을 진열해놓은 책장 앞에서 심리학 서적을 찾아 뒤적였다. 


심리적 불안감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에 빠지거나 괴로운 일로 인해서 무기력한 상태. 신체에 식은땀, 가슴이 떨리고 두근거리는 현상. 홍빈의 떨리는 손끝이 머무는 페이지에 유난히 굵은 글씨로 적힌 문장은 명확하고도 간단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가벼운 노이로제 증상.’



“아저씨! 테니스의 왕자 있어요?”


21시 37분. 매일 밤 고등학교 자습시간이 끝날 때쯤 어김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의 등장에 홍빈은 경기를 일으키며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떠는 홍빈의 눈앞에 성큼성큼 다가온 노이로제의 원흉은 허리를 숙여 바닥에 나뒹구는 책을 집어 든다.



“와 진짜 막 다룬다. 이거 팔아야 돈 버는 거 아니에요?”


숙였던 허리를 바로 세운 뒤 홍빈과 마주선 남자는 손으로 책에 붙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웃었다. 홍빈의 눈앞에 나타난 남자는 반듯하게 다려진 교복을 차려입은 고등학생이었다. 


분명 ‘본 서점은 만화책을 취급하지 않습니다.’라고 써 붙여 놨는데. 고등학생 덕후여, 너는 한글을 읽지 못하는 것이니? 같은 언어로 대화를 하면서도 의사소통 장애를 일으키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이 덕후는 일주일 전부터 홍빈의 서점에 출몰했다. 처음 며칠 웃음과 친절한 설명으로 덕후를 타이르던 홍빈은 그 출몰이 사흘을 넘어가자 완전히 질리고 말았다. 한평생 책을 친구삼아 살아온 홍빈에게 이러한 고객의 출현은 큰 스트레스를 가져다주었다. 만화책이라니, 우리 서점에 만화책 따위는 용납할 수 없어.


“저기.”

“한상혁이요.”

“그래 한상혁 학생. 만화책은 만화방에 가서 보는 게 어떨까.”

“이 근처에 만화방 없어요.”


진심으로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은 홍빈이 주먹을 꼭 쥐자 그걸 보던 상혁이 뻔뻔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댔다. 아오, 진짜, 등 앞뒤 다 잘라먹은 문장어휘를 구사하던 홍빈의 손안에서 반들반들한 책표지가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러니까 여기에 들여놓으면 안돼요?”


옛적부터 말이 안 통하는 종족은 짐승뿐이더라. 더 설명을 해서 무엇하리.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홍빈은 싸가지 없는 고딩의 양 볼을 꾹 쥐었다. 젖살도 안 빠진 꼬맹이가 감히. 으! 흐즈므스으! 젖살이 통통한 볼을 잡아당기자 울상을 짓는 상혁의 못생겨진 얼굴이 꽤나 볼만해서 홍빈은 기분이 좋아졌다. 새빨개진 자신의 뺨을 감싸 쥐고는 한참을 끙끙대던 상혁이 대뜸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허락 없이 내 볼 만졌죠! 나 미성년잔데?”







[택랍] c. ㄸ딱히창고를좋아해서그런건아냐



“이건 엄연히 직장 성희롱인데요?”


먼저 들이댄 게 누군데 어디서 수작질이야. 앙큼하게. 어이가 없어진 택운이 자신보다 훌쩍 키가 큰 원식을 올려다보며 같잖다는 표정을 지었다. 믿거나 말거나 택운은 공과 사를 깔끔하게 구분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했다. 그러니까 아무리 고용한 알바생이 자신에게 추파를 던져도 직장에서까지 본인의 사생활을 광고하고 다닐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뜻이었다. 


김원식은 선수였다. 덩치도 좋고 무엇보다 축 처진 눈매가 순둥순둥해 보여서 택운은 큰 고민 없이 원식을 고용했다. 며칠 잔뜩 주눅이 들어 택운의 눈치를 슬슬 살피는 게 안쓰러워 잘해줬더니 일주일도 지나기도 전에 순둥순둥했던 눈매가 야하게 돌변한 것은 사실 택운의 잘못도 있다 하겠다. 


“입 다물고 바지 좀 벗어볼래?”


그리고 이렇게 택운의 신경을 박박 긁어놓는 경지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었다. 끝까지 시치미 뚝 떼고 순진한척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원식을 보며 택운은 입맛을 다셨다. 원식은 그런 택운을 보고 길게 뻗은 얄팍한 눈매를 접으며 웃었다. 어우 변태. 



장난스럽게 택운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쪽쪽 키스를 퍼부은 원식은 강아지 같은 웃음을 지으며 입고 있던 셔츠를 훌렁훌렁 벗어던졌다. 훤칠한 키에 탄탄한 복근을 꿀렁대며 택운의 허리를 잡고 밀어붙이자 택운이 중심을 잃고 벽으로 거세게 밀쳐졌다. 등으로 전해지는 충격에 아픈 소리를 내는 택운의 입술을 다급하게 찾아드는 원식을 받아내는 택운은 맞물린 입술 사이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몸매도 섹시한 우리 알바생. 힘도 좋아요.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아랑곳 않고 익숙한 동작으로 서서 원식의 바지 버클을 재빠르게 풀어내는 택운의 손놀림이 거칠었다. 


"어, 근데 왜 내가 깔려요?"

"그럼 누가 깔려."


너무도 당연하게 원식을 벽에 밀어붙인 택운의 행동에 당황한 원식이 택운의 어깨를 붙잡았다. 뭐야 이건 내가 생각하던 그림이 아닌데? 무표정한 얼굴로 뻣뻣하게 굳은 원식의 허벅지를 잡고 벌리던 택운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잠깐, 이건 아닌데?! 금방이라도 옷을 추스려입고 뛰쳐나갈 것 같은 원식의 어깨를 잡아 누르던 택운은 잠시 고민했다. 지금 너 나가면 나 밤새도록 잠 못 잔다고. 잠시 고개를 숙인 체 생각하던 택운이 창고 구석에서 버둥거리는 원식의 입에 쪽 하고 키스를 했다.


"…….원식아."

"……." 

"다음에 네가 박으면 되잖아."

"헐."

"지금 급하니까 그냥 하자 알았지?"


키스에 금세 흐믈흐믈 녹아내린 원식의 표정을 본 택운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성공해써. 






번외. ㄸ딱히야한걸좋아해서그런건아냐



“근데 우리는 회식 안 해요?”

“일하는 애가 너 하난데 무슨 회식이야.”

“원래 새 직원 오면 회식하는 거 아닌가?”

“넌 직원 아니고 알바잖아.”


헐. 지금 비정규직이라고 차별하는 거예요? 원래 회식 같은 것도 하고 네? 술도 한잔씩 하고 어? 그래야 서로에 대한 친밀감도 높아지고 팀워크도 좋아지고! 가정이 화목해지고! 나라가 바로서고! 세계의 평화가……. 아 왜 때려요. 보다 못한 택운이 팔을 랩퍼처럼 흐느적거리는 원식의 콧등을 튕겼다. 


“매니저 혀엉.”

“시끄러워.”

“매니저니임.”

“그만하자.”

“매니저 오빠.”

“......”


그랬다. 사실 택운은 오빠소리를 조금 많이 좋아했다.


“하, 택운형…… 으,”

“또 매니저님이라고 불러라 응?”


아하핫. 흐……. 매니저 오빠. 서점 창고 구석에 구겨지듯 박혀 택운 허릿짓을 받아내던 원식이 낮은 목소리로 키득였다. 택운이 허리를 꽝 하고 부딪혀 오자 원식이 질세라 허벅지로 택운의 허리를 꽉 조였다. 미친 알바생 존나 야해. 풍기문란죄로 잘라버려야지. 나 자르만 해봐. 성희롱으로 고소할 거야. 연신 키득이는 원식의 종아리 끝에 걸린 속옷이 달랑달랑 흔들렸다. 















서점에서 만나세요 fin. 








* 커플링은 굳이 따지자면 켄엔 혁콩 택식 인것같습니다 

단어 연성에서 썼던 조각을 줍줍해서 세조각으로 만들었습니다 ㅇㅅ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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