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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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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상조 (간 간, 쓸개 담, 서로 상, 비칠 조) [ 肝膽相照 ]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인다는 뜻. 친구 사이의 眞正(진정)한 우정.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가까이 지냄.] “피지 마.”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순간 쫄았다. 학연은 재킷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찾다말고 택운을 바라봤다. 무섭게 진지 빨고 그르냐 인마. 한 동안 점심시간에 안 보인다 싶더니 오늘은 가장 먼저 옥상에 올라와 있다. 학연은 어느새 의욕 없는 표정으로 돌아간 택운의 눈을 피해 육중하게 닫힌 옥상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급식실까지 최단거리를 자랑하는 학연의 교실답게 급식도 먼저 받는 편이었다. 그래서 학연은 누구보다 빠르게 점심을 해치우고 가장 먼저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옥상 가장 먼저 올라가기 놀이에 열나게 심취해있던 학..
꼭 두 사람만큼의 온기로 데워진 이불속에서 가만히 몸을 뒤척였다. 모처럼 편안하게 잠에서 깬 택운은 눈도 뜨지 않은 채 익숙한 동작으로 탁자 위를 더듬어 아직 울리지 않은 알람시계를 눌러 껐다. 가슴위에 묵직하게 얹힌 학연의 팔뚝을 가만히 어루만지자 잠결에도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인다. 이불 밖으로 드러난 맨 어깨 위로 어슴푸른 새벽빛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흘렀다. 게슴츠레 창밖을 살핀 택운은 피부에 닿는 서늘한 공기를 느끼며 덮고 있던 이불을 끌어올려 드러난 학연의 어깨를 감쌌다. 고요하고도 평온한 아침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택운은 이불 아래로 손을 뻗어 학연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손바닥에 감기는 매끈한 피부는 아직까지 밤새 나누었던 열기를 머금고 있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가만히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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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이재환x이홍빈 시팔. 무슨 교양과목이 이렇게 빡센 거야. 생각을 해도 짜증이 나는 듯 재환이 거칠게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진짜 거저먹는 학점이라며 이빨을 까던 여자 후배의 말을 믿은 게 잘못이었다. 선배 진짜에요. 진짜 쉽데요. 2장짜리 레포트 두개, 기말시험 하나 보면 끝이라니까요? 컴엔지 하는 제 친구 박경 알죠. 박경 걔가 저번 학기에 그 과목 들었는데 에이쁠 받데요. 진짜 쉬운가봐요. 걔 레포트 완전 젬병인데. 에이쁠은 개뿔. 재환은 첫 수업부터 홀로 안드로메다를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박경은 에이쁠을 받았다니 머리를 쥐어뜯으며 분노하던 재환은 개나 줄래도 찾아 볼 수 없는 자신의 예술 감각을 탓해야했다. 은재 후배한테 부탁해서 박경 레포트나 뜯어와야겠다. 재환이 인상을 쓴 채 교양과목을 추..
하루 중 가장 나른하다는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사무실 안으로 햇볕이 비스듬하게 내려앉아 눈이 부셨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해를 볼일이 없는 원식은 눈이 부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버티칼을 내리지 않고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던 참이었다. 서류에서 눈을 뗀 원식은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간단한 점심을 먹고 서늘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앉아있으니 머리가 무거워 지는 것이 어쩔 수가 없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사무실 한곳에 머무른다. 영업기획부 1년차 한상혁 사원이 앉아있는 자리였다. 잠시 고민을 하던 원식은 잔이 빈 머그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너무 많이 마시면 얼굴 까매져, 원식씨!” 영업기획부 부팀장 재환이 탕비실로 가는 원식의 등 뒤에 대고 한 소리였다. 물론 그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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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학연은 마른기침을 하며 입고 있던 가죽 재킷의 깃을 여몄다. 추위로 움츠러든 학연의 어깨가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이동하는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돌아가던 히터에 노곤하게 풀렸던 몸이 밖을 나서자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방송국. 연습실. 그리고 숙소와 차안. 학연은 겨울이 이리도 성큼 다가섰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바깥 공기를 느낄 조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스케줄 때문이었다. 계절도 날씨도 일상과는 조금씩 멀어지는 그런 삶. 이렇게 매일같이 전쟁터 속을 헤매는 기분으로 살게 될 줄 그때는 알았을까. 학연은 금세 서늘하게 식은 손을 재킷 안으로 애써 우겨넣었다. 얼어붙을 듯 차가운 밤공기가 자신의 기분까지 상쾌하게 돌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은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목..
Amore by. Ryuichi Sakamoto 클릭하면 재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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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에 저장된 김변태의 이름을 바꾼 이유 김원식x한상혁 나는 안대를 끼고 자는 버릇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때 생긴 습관은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도 쭉 이어졌다. 지금도 조금이라도 잠을 설칠 것 같다 싶으면 제일 먼저 찾는 잇템이 되어버렸으니까. 문제는 원식이 형과 함께 살면서 생겼다. 머리만 바닥에 닿았다 하면 잠이 드는 형의 사전에 잠을 설친다는 단어가 있을 리 없었다. 형은 침대에 누워서 사색에 잠겨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빵 터져서 웃었다. 생각이란 걸 할 시간도 없이 잠이 든다는 뜻이었다. 솔직히 나도 어디서 잠자리 가린다는 소리는 들어 본적이 없는데, 형에 비하면 나는 완전 까탈스러운 여고생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였을까. 원식이 형은 내가 안대를 끼고 잔..
"차학연 선생님!" 학연이 다급한 목소리의 간호사를 밀치고 뛰었다. 재빠르게 소독을 마치고 수술실 안으로 발을 들이자 쏟아지는 피 냄새에 학연은 인상을 썼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수술용 마스크와 장갑을 받아들자 보조를 돕는 레지던트가 호흡기에 숨을 의지하고 있는 환자의 상태를 빠르게 브리핑한다. 학연은 환자 주변으로 정신없이 움직이는 스텝과 가벼운 눈짓을 주고받았다. 일각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학연은 빠르게 흘러들어오는 간호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으로는 환자의 상태를 훑었다. 괜찮다. 나쁘지 않아. 불규칙적인 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기계를 노려보는 학연의 등이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는다. "출혈이 심해, 심박출량이 너무 낮아." "도파민 5mg 투여합니다." "10mg 으로 높여. 수혈해야 되는데 환자 혈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