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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엔] 어른아이 본문

퍝ㅌ/단편

[켄엔] 어른아이

밤비v 2015. 11. 23. 03:09


 





춥다. 학연은 마른기침을 하며 입고 있던 가죽 재킷의 깃을 여몄다. 추위로 움츠러든 학연의 어깨가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이동하는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돌아가던 히터에 노곤하게 풀렸던 몸이 밖을 나서자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방송국. 연습실. 그리고 숙소와 차안. 학연은 겨울이 이리도 성큼 다가섰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바깥 공기를 느낄 조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스케줄 때문이었다. 계절도 날씨도 일상과는 조금씩 멀어지는 그런 삶. 이렇게 매일같이 전쟁터 속을 헤매는 기분으로 살게 될 줄 그때는 알았을까. 



학연은 금세 서늘하게 식은 손을 재킷 안으로 애써 우겨넣었다. 


얼어붙을 듯 차가운 밤공기가 자신의 기분까지 상쾌하게 돌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은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목에서부터 잔기침이 올라왔다. 가습기를 한 대 더 사야겠다. 


집이 너무 건조했다. 재환이 인터넷으로 구매한 가습기가 고장이 났다. 용돈을 모아 산 가습기는 방바닥에 찬물만 꾸역꾸역 뱉어내다가 그만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말았다. 혁이가 잔기침이 심하던데. 그리고 재환도.



학연은 예리하게 날이 선 그 얼굴을 떠올리며 또 한 번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새하얀 입김이 공중에서 담배 연기처럼 힘없이 흩어진다. 귀를 기울여 듣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지극히 단조로운 대화. 매니저의 목소리에 학연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꾸벅 숙였다. 내일 뵐게요. 자동차 엔진 소리에 파묻혀 거의 들리지 않는 로드 매니저의 목소리를 끝으로 학연은 느리게 등을 돌렸다. 자동차가 골목을 꺾어 나가자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목에 정적이 들어찬다. 학연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춥다. 






눈이 빠지도록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대던 재환은 소파에 리모컨을 집어던졌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지루한 다큐멘터리와 쇼핑 광고들이 한창이었다. 심심하다. 반나절의 여유, 개인적인 시간이 좀처럼 허락되지 않은 멤버들에게 지금 이 시간은 달콤한 일탈과도 같았다. 재환은 홀로 개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을 학연을 기다렸다. 



상혁은 움직이기 귀찮아하는 택운을 다그쳐 산책을 나갔고 평소 영화보기를 즐겨하는 홍빈도 인터넷으로 영화표까지 구매를 마친 상태였다. 원식 홀로 소파에 꼿꼿하게 앉아 반복적인 동작으로 티비 채널을 돌리는 재환의 눈치를 살폈을 뿐. 그마저도 보란 듯 원식을 잡아 집을 나서는 홍빈 덕분에 재환의 기분은 땅바닥에 곤두박질치는 중이었다. 


모처럼의 자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지만 재환은 꿋꿋하게 학연을 기다렸다.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소파에 기대 앉아 리모컨을 돌려대던 재환이 도어락 돌아가는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미 많이 늦은 시간. 재환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아쉬움보다 학연의 귀가에 안도감을 느끼는 스스로에게 안쓰러움을 느꼈다. 

 


“애들은?”

“나갔어요.”


학연이 문을 열고 숙소로 들어서자 거실 안쪽에서 부스스하게 헝클어진 머리를 한 재환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말없이 트레이닝복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삐딱하게 선 재환의 뒤를 흘끔대던 학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학연의 질문에 무성의하게 대답한 재환은 학연이 벗은 재킷을 받아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받아든 학연의 옷에서는 냉기가 폴폴 묻어났다. 재환은 말없이 들고 있는 재킷을 힘을 주어 잡았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따듯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오늘도 한참이나 홀로 집 주변을 서성였을 학연이었다. 거기가지 생각이 미치자 괜한 짜증이 치밀었다. 학연에게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건 재환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재환은 평소보다 귀가시간이 늦어지는 학연을 기다렸다. 겁쟁이 차학연. 멀리 갈 용기도 없는 차학연.  

 

“너는 왜 안 갔어?”

“그냥요.”


쾅. 한손으로 닫은 옷장 문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셔츠를 벗고 머리부터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꿰어 입던 학연이 커다란 소리에 놀라 잠시 몸을 움츠렸다. 학연이 어색한 손길로 헝클어진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재환의 눈을 피했다. 지금 단 둘이 숙소에 남은 이 상황이 어색하다. 한숨을 내쉬는 재환의 널찍한 뒷모습을 보던 학연의 얼굴에 낭패감이 서렸다. 삐졌네. 삐졌어. 예정 시간보다 늦게 숙소로 들어왔다고 투정부리는 게 분명했다. 재환이 얼마나 세심하고 섬세한 인간인지는 차학연 혼자만아는 사실인 게 틀림없었다. 말없이 거실로 나가버리는 재환의 뒤를 눈으로 쫒던 학연이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티비에서는 쇼핑 광고가 한창이었다. 둘은 대화 단 한마디 없이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리모컨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는 학연을 물끄러미 보던 재환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른 어깨. 살짝 숙여진 고개 뒤로 마른 목뼈가 툭툭 비져나온다. 


재환은 소리 없이 학연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거두었다. 한손으로 감아쥐어 보고 싶은 묘한 충동이 인다.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새 과자 봉지의 한쪽 귀퉁이를 잡아 뜯으면서 어깨로 재환의 다리를 툭툭 밀었다. 


“저거 맛있겠다. 살까?”

“그래요.”


부스럭 부스럭. 은박 포장을 벗겨낸 학연이 재환의 얼굴 앞으로 초콜릿 조각을 내민다. 소파 아래 무릎을 세워 앉은 학연 주위로 빈 과자 봉지들이 어지럽게 흐트러져있다. 



무성의하게 뜯어낸 은박 껍질이 퍼즐의 한 조각처럼 쌓여있는 과자 봉지 사이에 자리 잡는다. 학연이 내민 손을 따라 재환이 비스듬하게 기댔던 허리를 낮게 숙였다. 초콜릿 조각이 학연의 손에서 재환의 입술로 느릿하게 옮아간다. 


손끝의 열기로 살짝 녹아든 그것은 쓰고 단맛이 났다. 




시끄럽게 돌아가던 텔레비전의 전원을 끄자 새까만 화면과 함께 숙소에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먹먹함에 잠시 몸을 굳히던 재환은 몸을 훌쩍 일으켜 거실 한 가운데 섰다.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광고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학연은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움직이지 않아 뻐근해진 어깨를 이리저리 움직이던 재환은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잠이 든 학연을 가볍게 안아 들었다. 


부스럭 부스럭. 침실로 걸어가는 재환의 발아래 어질러진 놓은 과자 껍데기가 이리저리 채여 굴러다녔다. 



방안으로 들어선 재환의 얼굴이 좀처럼 펴지지가 않는다. 작지 않은 키의 학연은 터무니없이 가볍다. 


요즘 조금 더 마른 것 같다. 조심스럽게 학연을 뉘인 재환은 조심스럽게 잠이든 학연의 얼굴을 살폈다. 짧은 시간에 기절하듯 잠이 들 만큼 피곤했다면 그냥 들어가서 쉬면 될 텐데. 학연은 꼭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을 했다. 피곤하지 않은 척, 외롭지 않은 척. 내일 아침이면 일어나서 멋쩍은 웃음을 짓겠지. 


등에 닿는 푹신함에 몸을 뒤척이던 학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웅얼웅얼 잠꼬대를 하기 시작했다. 흔히 볼 수 없는 학연의 모습에 슬쩍 웃음을 짓던 재환이 금세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학연이 준비된 사람이었다면 재환은 방금 땅속에서 꺼내든 원석과도 같았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신과 완벽한 모습으로 환하게 빛나는 학연.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자신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홀로 밤길을 서성이는 대신 학연이 자신의 어깨를 찾아 준다면. 학연이 조금도 기댈 수 없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어 버린 샘이라 입 안이 썼다. 재환은 욕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욕심이 난다. 


그래서 재환은 혼란스러웠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 거세게 몰아치는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재환은 외롭고 또 혼자였다.





-





“재환씨도 그렇고 두 분은 볼 때마다 마르는 것 같아요.”

“넵. 다음 앨범 준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러다가 없어지겠어요.”

“하하.”



재환의 가벼운 농담과 학연의 어색한 웃음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헤드셋으로 흘러들어갔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부자연스러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학연은 연신 굳은 표정으로 헤드셋을 만지작거렸다. 


잠시 광고 듣고 올게요― 부드럽게 울리는 라디오 진행자의 멘트를 마지막으로 헤드셋을 목에 걸친 학연은 이미 여러 훑어보았던 큐시트 한 모서리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이미 몇 번이나 읽고 머릿속으로 연습했던 멘트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구김 하나 없던 종이는 학연의 손안에서 볼품없이 일그러졌다. 라디오 내내 곁눈질로 학연을 살피던 재환 역시 말없이 물을 들이킬 뿐이었다. 


피곤하다. 재환은 이유 없이 몰려드는 피로감에 뻑뻑한 눈가를 문질렀다. 오늘따라 좀처럼 매끄럽게 끼어들지 못해 어색하게 웃기만 하던 학연 때문에 라디오를 스케줄을 진행하는 시간 내내 묘한 긴장감에 시달렸던 재환이었다. 재환이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제야 앉아있던 학연이 헤드셋을 벗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요?”

“그냥. 괜찮아, 너는?”


말끝을 흐리는 학연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던 재환은 힘없이 큐시트를 챙기는 학연을 보며 잠시 대답할 말을 골랐다. 


누가 봐도 괜찮지 않다는 걸 아는데 습관처럼 아무렇지 않은 대답을 한다. 재환은 몸을 숙여 의자 뒤에서부터 책상으로 손을 뻗었다. 등 뒤에서 닿아오는 온기에 몸이 굳는다. 재환의 얼굴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재환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학연의 손에서 큐시트를 빼들었다.



“나도, 괜찮아요.”


재환이 잠시 학연에게 기댔던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어색하게 굳은 학연이 뒷목을 문질렀다. 닿아오던 온기가 사라지자 아쉬움이 남는다. 겉옷을 챙긴 학연이 스튜디오를 나서자 스태프에게 인사를 돌린 재환이 말없이 학연의 손을 잡아끌었다. 가요. 집에.






연습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이른 저녁시간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재환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습관처럼 티비가 돌아가는 거실로 발을 옮겼다. 스케줄이 끝나고 숙소에 들어온 멤버들의 행동습관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뉘었다. 쉬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는 부류와 거실을 배회하는 부류. 재환은 그 중 후자에 속했다. 소파 한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던 택운이 무료한 표정으로 리모컨을 돌리고 있었다. 수건을 어깨에 걸친 재환이 어슬렁어슬렁 소파로 걸어오자 팔걸이에 몸을 기댄 택운이 리모컨을 재환에게 넘긴다. 


“뭐 재밌는 거 있어요?”

“응. 아니.”

“어, 이거 막장드라마.”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던 재환의 시선이 요즘 가장 핫하다는 수목드라마에 고정했다. 리모컨을 쥐고 잠시 택운의 반응을 살피던 재환은 말없이 텔레비전을 응시했다. 어떤 채널을 돌리던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방안에서 원식과 상혁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거실까지 울렸다. 화면 속 여자가 상대 배우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 재미없다.  


저 남자가 범인인가. 드라마를 제대로 챙겨 본적이 없으니 전개를 알 리가 없었다. 차라리 예능이나 볼걸. 


화면 속 배우들의 대사가 점점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 쯤 후드티를 껴입은 방을 나온 학연이 말을 걸어왔다. 산책 갈까. 대답 없는 택운대신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재환은 덜 말린 머리를 대충 털어낸 뒤 후드를 뒤집어썼다. 


밤낮으로 날이 제법 추워지고 있었다. 얼굴 절반을 가릴 정도로 도톰한 목도리를 둘둘 감은 둘은 근처 카페에 들려 따듯한 음료를 손에 쥐고 동네를 배회하는 중이었다. 재환은 찬바람에 뻣뻣하게 굳은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곱슬기가 있는 머리였는데 지금은 일자로 쭉 펴졌다. 사람은 역시 꾸미고 봐야 하는 게 옳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시절의 학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보다 더 어린 모습의 학연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재환은 자신보다 두어 걸음 앞서 길을 걷는 학연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





무뚝뚝한 성격과 달리 의외로 로맨티스트인 홍빈은 연애경험이 많지 않은 원식이 무드가 없다며 험담을 늘어놓았다. 진짜 착한데 눈치가 없어. 어제 같이 영화 보는데 막 졸더라니까. 무대를 위해 대기하는 시간에 멤버들이 마실 커피와 음료를 사기위해 재환과 함께 커피 전문점에 들린 홍빈이 자기 몫의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말했다. 



“형은 어때?”


습관처럼 단것을 좋아하는 학연을 위해 바닐라 라떼위에 시럽을 펌핑하던 재환이 어깨를 으쓱였다. 홍빈은 테이크아웃 트레이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머뭇대는 재환의 어깨를 툭 쳤다. 참나, 말 안 해도 알겠다. 




학연의 잔소리를 가장 못 견뎌 했던 사람은 상혁이었다. 


홍빈은 아침 내내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며 싸우던 상혁과 학연을 떠올리며 웃었다. 2년 동안 끈기 있게 자신을 방치했던 택운을 미성년자 딱지를 뗀 상혁이 가만히 놔 둘리 없었다. 


젊어서 좋겠다. 그런 상혁을 보며 안절부절 못하던 원식과 이어폰을 꼽은 체 제일 먼저 차에 올라타던 택운까지. 그러고 보면 데뷔 전부터 상혁은 학연에게 꾸중을 듣다 울음을 터트릴지라도 자신의 고집은 절대 꺾지 않았었다. 재환은 새삼 그런 무모함이 부러워졌다. 우리 미자 많이 컸어.     



“형 잠깐만.”


할 말 있어. 홍빈이 대기실로 들어가려던 재환을 잡아끌었다. 걸어오는 내내 어제 본 영화 줄거리를 신나게 털어놓던 홍빈이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정색하듯 말을 아꼈다. 의아하게 생각하던 재환이 장난을 걸었지만 서늘한 표정으로 반응이 없는 홍빈과 함께 어색한 분위기 속에 대기실로 들어가려던 재환이었다. 



“원식이가 형들 눈치 봐.”


쥐고 있던 커피 트레이를 반대 손으로 옮겨 잡은 재환이 가만히 서서 홍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예상치 못한 주제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저 아무것도 들지 않은 빈손이 어색할 뿐이었다. 결국 양손으로 커피 트레이를 받쳐 든 재환은 말없이 홍빈이 다시 입을 열기 전까지의 침묵을 느리게 곱씹었다.



복도 한쪽 귀퉁이에선 둘의 곁으로 방송국 스태프와 관계자들이 분주한 걸음으로 스쳐갔다. 잠시 반대쪽 복도로 시선을 주던 홍빈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미안.”

“이러는 거.”

“......“

“형 안 같아.”


재환과 거의 동시에 말을 내뱉은 홍빈이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홍빈은 무엇이든 돌려 말하는 법이 없었다. 답지 않게 주눅이 들어 보이는 재환의 표정에 홍빈은 잠시 생각해 두었던 말들을 아끼기로 다짐했다. 따지고 보면 상혁이 저렇게 학연에게 대드는 이유 중 하나는 재환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재환의 손에서 자기 몫의 커피 컵을 낚아챈 홍빈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눈썹 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머리카락 넘기는 행동도 멋있을 수가 있냐. 재환은 멋쩍은 표정으로 스프레이로 뻣뻣하게 굳은 자신의 앞머리를 훑어 올렸다. 가요, 커피 식겠다. 홍빈이 미련 없이 대기실을 향해 등을 돌렸다. 담아 뒀던 말을 꺼내서인지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면 착각인가. 피식 웃으며 뒤를 따라 걷던 재환이 주머니 안에 손을 찔러 넣었다.  말아 쥔 손끝이 조금 시렸다. 














*

리얼물. 리얼물은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이 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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