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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혁] 사내연애 본문

퍝ㅌ/단편

[랍혁] 사내연애

밤비v 2015. 11. 24. 23:38




하루 중 가장 나른하다는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사무실 안으로 햇볕이 비스듬하게 내려앉아 눈이 부셨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해를 볼일이 없는 원식은 눈이 부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버티칼을 내리지 않고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던 참이었다. 서류에서 눈을 뗀 원식은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간단한 점심을 먹고 서늘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앉아있으니 머리가 무거워 지는 것이 어쩔 수가 없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사무실 한곳에 머무른다. 영업기획부 1년차 한상혁 사원이 앉아있는 자리였다. 잠시 고민을 하던 원식은 잔이 빈 머그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너무 많이 마시면 얼굴 까매져, 원식씨!” 


영업기획부 부팀장 재환이 탕비실로 가는 원식의 등 뒤에 대고 한 소리였다. 물론 그 소리는 영업기획부 1년차 사원 상혁의 귀에도 들어갔다. 우리 원식씨 얼굴 그렇게 까만 거 아닌데… 재환선배는 인사과 차학연 과장님 못보셨나봐 진짜... 그리고 얼굴 까만게 어때서. 건강해 보이고 좋잖아. 차과장님 진짜 까만데. 별명도 흙과장님이잖아. 선배 다음 회식때 두고 봐...


“재환씨. 거짓말하면 코 커집니다.”


재환의 농담에 원식이 대꾸를 하자 사무실에 가벼운 웃음이 퍼졌다. 모니터 속으로 빨려들어갈듯 집중해서 업무 보고서를 작성하던 상혁은 그만 책상위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원식이 상혁이 앉아있는 의자를 자연스럽게 툭 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크흠, 어색함을 숨기기 위해 과장된 헛기침을 하는 상혁의 뒷목이 붉었다.



상혁은 조심스럽게 사무실을 둘러본뒤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티내면 안 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거야 한상혁. 어색한 표정으로 쭈뼛쭈뼛 탕비실을 향하는 상혁의 발걸음이 빠르다. 금방이라도 옆 자리의 홍빈선배가 어딜 가냐며 자신의 이름을 불러재낄까봐 심장이 벌렁거렸다. 걸음걸이도 어색하고 표정도 어색하다. 상혁은 괜한 쑥스러움에 화끈거리는 귀를 만지작거렸다. 목소리만 들어도 부끄럽고 생각만 해도 저절로 입 꼬리가 올라가니 정말 큰일이다. 누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기라도 한다면 분명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 것이 분명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모퉁이를 돌자 누군가가 상혁의 허리를 잡아챘다. 으악! 상혁이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르려다 재빨리 입을 틀어막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랐어요?”

“팀장님...”

“그렇게 놀라면 어떻합니까. 나 따라 들어온거 아니에요?”


괜히 놀란게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는 상혁의 양 볼이 붉어졌다. 따라들어온건 맞는데요. 뒤에서 그렇게 끌어안으면 누구라도 놀라잖아요. 어색한 표정으로 빨개진 양 볼을 손으로 꾹꾹 누르기를 반복하는 상혁을 본 원식이 입꼬리를 씨익 올려 웃었다. 아 귀여워.


“하루 종일 나 안보고 싶습니까.”


무뚝뚝한 말투에 투정이 섞여있어 상혁이 작게 키득였다. 무슨 소리에요. 회사에서 매일 보는데. 상혁이 말끝을 흐렸다. 원식이 감싸 안은 팔에 힘을 줘 끌어안았기 때문이었다. 저한테 시위하는 거예요? 상혁은 숨 막히도록 원식의 품에 안겨있으면서도 둘의 모습을 들킬까 두려워 심장이 벌렁거렸다. 


“근데요 팀장님. 이 손좀…”

“잠시만.”

“어…”

“잠시만 이러고 있읍시다.”


상혁이 울상을 지었다. 이러다 걸리면 우리 둘 다 잘려요. 백수 되면 책임지나?! 상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정도의 애정표현도 부담스러워 한다면 팀장님이 서운해 할지도 몰라. 상혁은 어깨에 줬던 힘을 풀고 원식의 짧은 머리칼을 살살 쓰다듬었다. 원식의 투정어린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괜히 부끄러워 말 한번 편하게 걸지 못했다. 일부러 피하려고 한건 아닌데, 아직까지는 팀장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또 얼굴을 마주보는 것도 쑥스럽다. 


“상혁씨 오늘 야근 있어요?”

“아니요.”

“그럼 우리 집에서 밥 먹읍시다.”


집에서 만두 빚었다고 엄청 보내주셨더라고요. 상혁의 허리를 끌어안은 원식이 상혁의 어깨에 턱을 괸 채로 조근조근 말을 이었다. 따듯한 체온과 원식이 즐겨 쓰는 향수냄새가 코끝에 스치자 괜히 마음이 설렌다. 무섭게 보이는 인상 때문에 처음 원식을 대할 때 무척 어려워했던 기억이 벌써 일 년 전 일이었다.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 때문에 홀로 이 감정을 떠안고 있기를 몇 달. 상혁에게 기적처럼 다가온 사람이었다. 먼저 좋아한 주제에 덜컥 겁이 나서 피하기를 몇 번. 울기도 몇 번. 그때마다 늘 다정한 시선으로 기다려주던 원식과 함께하게 된지가 겨우 세 달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상혁에게만 종종 보여주는 따듯함이 얼마나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지 몰랐다. 결정적인 순간에만 우유부단해지는 성격을 아는 건지 늘 거절할 수 없게 상혁을 이끄는 원식의 행동에 늘 가슴이 뛰고는 했다. 


원식은 상혁의 예스가 떨어지고 나서야 안심이 되는지 자신의 머리카락을 상혁의 목덜미에 마구 부볐다. 아 빨리 퇴근하고 싶다. 원식이 상혁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체 웅얼거리자 간지러움에 상혁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월급 루팡은 안 돼요. 팀장님.”





상혁은 자신의 허리를 감고 있는 원식의 팔을 부드럽게 풀어냈다. 등으로 닿아오는 다정한 체온에 뻣뻣하게 뭉쳐있던 근육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럼 저녁에 뵙겠습니다아. 


“상혁씨 잠시만.”

“네?”

“이거 가져갑시다.”


따듯한 원식의 손이 상혁을 붙잡는다. 원식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유리잔을 건넸다. 얼음이 잔뜩 들어간 레몬에이드였다. 탕비실에 들렀다 맨손으로 나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한상혁씨. 원식이 장난스러운 말투로 상혁에게 레몬에이드를 건넸다. 으아. 내 정신좀봐. 유리잔을 받아든 상혁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고맙습니다. 원식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머그컵에 얼음을 잔뜩 넣은 커피를 들고 웃었다. 빠르지는 않지만 꼼꼼한 업무처리로 나름 칭찬을 받는 상혁의 이런 엉성한 면을 발견할 때마다 귀여워서 입이 찢어지는 원식이었다. 



원식은 입사 첫날 훤칠하게 큰 키의 상혁이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영업기획부에 인사를 하고 다니던 때를 떠올렸다. 웃지 않으면 조금은 서늘한 인상이 되어버리는 상혁의 당황한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연애에 있어서는 담백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상혁을 만나고 나서 그렇지 않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한참이나 붉어진 얼굴을 부끄러워하는 상혁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원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에 봅시다. 상혁씨. 머그컵 때문에 시원해진 원식의 손가락이 상혁의 손끝에 잠시 걸렸다 떨어졌다. 



“상혁씨 물품창고에 있는 샘플 확인만 좀 해주면 안될까?”

“옆 건물에 있는 지하창고 맞죠?”

“응응. 부탁할게. 대신 이것만 하고 퇴근해요. 진짜 고마워 상혁씨.”


폐쇄공포증 때문에 무서워서 도저히 물품창고에는 들어가지 못하겠다는 영업기획부 2년차 김도봉씨는 컴컴한 창고를 떠올리기만 해도 겁이 나는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상혁에게 물품목록이 적힌 파일을 건네주었다. 상혁씨 정말 고마워. 상혁씨 아니었으면 난 정말……. 내일 후식 커피는 내가 쏠게, 정말이야. 생각만 해도 무서운 듯 공포심에 온몸을 부르르 떠는 선배님의 행동에 상혁은 실례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웃어버리고 말았다. 하하 아니에요. 여기에 적힌 물건만 확인하면 되는 거죠? 응, 내가 미리 표시해놨어. 그것만 좀 체크해주면 되요. 내일 영업팀이 가져갈 거라서 내가 해야 되는데 너무 무서워 죽겠어. 진짜 들어갈 때마다 울면서 나온다니까. 고맙다는 인사와 후식에 간식 커피까지 얻어먹게 된 상혁은 서류철을 받아든 채 사무실을 나섰다. 어차피 장부와 물품 비교를 하는 것뿐이니 오래 걸리진 않겠지, 그래도 팀장님이 기다리지 말아야 할 텐데. 






다섯 시 반이었다. 


원식은 뻐근하게 굳은 어깨를 쭈욱 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벌써 칼퇴근 준비를 하는지 여기저기 가방 챙기는 소리로 분주하다. 영업기획부 2년차 이홍빈씨는 벌써 가방까지 둘러매고 앉아있다. 금방이라도 건물 밖을 뛰쳐나가고 싶어 하는 표정이어서 원식은 슬쩍 웃었다. 홍빈씨 시계 뚫어지겠습니다. 그렇게 쳐다보면 시계바늘이 빨리 돌아가나?


“근데 홍빈씨. 혹시 상혁씨 못 봤어요?”

“상혁씨 물품창고 갔어요. 지금쯤 와야 할 텐데 벌써 바로 퇴근했나?”

“그렇습니까. 홍빈씨 수고했어요.”

“네. 팀장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사무실을 나서는 사원들에게 인사를 하던 원식은 느긋하게 짐을 챙겼다. 물품창고에 갔단 말이지. 생각보다 상혁이 늦는다. 왜 안 오지? 일이 오래 걸리나……. 도와주고 같이 퇴근해야 되겠다 마음먹은 영업기획부 팀장 김원식씨의 마음은 누구보다도 가볍다. 빨리 나가서 지는 해라도 좀 봐야 할 텐데. 


하루 종일 냉방이 쌩쌩 돌아가는 사무실 안에만 있으니 폭염더위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핸드폰으로 상혁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답장이 없다. 핸드폰은 사무실에 두고 갔으려나. 설마 엇갈리지는 않겠지. 원식은 핸드폰을 열어 다시금 메시지를 확인했다. 숫자 1이 없어질 기미를 안 보인다. 아직도 안 봤네. 살짝 상심한 표정을 짓던 원식은 물품창고가 있는 옆 건물 지하로 걸음을 옮겼다. 


“상혁씨 여기 있어요?”

“팀장님! 문 닫지마세요!”


‘쿵.’


“......”

“......”

“센서가 고장 났는지 안에서는 안 열리더라고요.”

“아.”

“팀장님 혹시 핸드폰 들고 오셨어요?”

“네. 상혁씨는요?”



상혁이 비어있는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금방 나갈 줄 알았거든요. 창고 구석에 주저앉아 있던 상혁이 인기척을 듣고 쏜살같이 뛰쳐나왔지만 이미 창고 안으로 들어선 원식의 뒤로 문이 단호하게 잠겼다. 상혁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원식이 뒤늦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당겨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물품창고가 있는 구건물은 사무실이 없어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데다 이미 퇴근시간을 넘긴 상황이라 밖에서 도움을 기다리기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불타는 금요일 밤에 늦은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있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하던 상혁은 울상을 지었다.


우선 보안업체에 전화해야 할 것 같은데. 그나마 침착한 원식이 잠금장치를 설치한 도어락 업체에 전화를 걸어 한참동안 상황설명을 했다. 미간을 찌푸리며 전화를 끊은 원식이 난감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한 시간.”

“헐.”


상혁이 입을 꾹 다물었다. 말이 좋아 지하창고지 선풍기 하나 달려있지 않은 밀폐된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건물 자체에 따로 냉방이 돌아가고 있지 않아 벌써부터 원식의 콧등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먼저 갇혀있던 상혁의 상태는 말할 것도 없었다. 단정하게 맸던 넥타이는 돌돌 감아 주머니 안에 넣어둔지 오래였다.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상혁은 들고 있던 파일로 팔락팔락 부채질을 했다. 창고 벽에 털썩 기대앉은 원식이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친다. 


“상혁씨 여기 앉아요.”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창고 벽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셔츠자락을 펄럭이는 원식에게 어색하게 대꾸한 상혁은 멀찍이 떨어져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 격한 운동을 한바탕 하고 온 것처럼 숨이 가쁘다. 더워. 덥다. 창고 안은 가라앉은 공기로 조용하기 그지없다. 숨을 내쉴 때마다 적나라하게 들리는 자신의 숨소리를 의식한 상혁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에잇. 긴장하고 있으니 더 숨차! 상혁은 자신의 숨소리가 원식에게 들릴까봐 간이 조마조마했다.  



“내 옆에 앉는 거 싫어요?”

“아, 아니에요!”

“그럼 이리 옵시다.”

“괘, 괜찮아요……. 그냥 서있을게요.”



상혁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 같아서 고개를 푹 숙였다. 좁은 밀실 안에 단 둘이 갇혔다. 그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펑 하고 터질 것 같은데, 아무렇지도 않게 원식의 옆에 가서 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머리를 벽에 기대고 있던 원식이 눈을 가늘게 뜬체 상혁을 올려다봤다. 


나 지금 굉장히 오해받고 있는 것 같은데, 대답은 꼬박꼬박 잘하면서 도통 눈을 마주쳐 오지 않는 상혁을 보고 있으니 오기가 생긴다. 안절부절 못하고 다가오지도 못하는 행동이라니. 원식은 자신이 엄청 위험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그냥 진짜 위험해 질까보다. 원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긴 문 앞을 서성이는 상혁의 등 뒤로 다가서자 인기척에 깜짝 놀란 상혁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한상혁씨 지금 나 시험하는 겁니까.


“으앗!”

‘쿵.’

 

놀란 상혁이 중심을 잃고 휘청대자 원식이 날렵하게 상혁의 허리를 감아 안았다. 하지만 함께 무게중심이 쏠린 원식이 중심을 잃고 상혁과 벽으로 함께 밀쳐졌다. 아야... 벽에 어깨를 부딪친 상혁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하마터면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칠 뻔 했는데 원식이 상혁의 뒤통수를 잡아줘서 다행이 뇌진탕이 오는 사태는 면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아...네.”

"많이 놀랐습니까."

“아니.....요.”


근데 우리 너무 가까이 붙어있는것 같은데...자신을 내려다보는 원식의 시선을 어색하게 피한 상혁이 원식의 품을 벗어나려 몸을 바르작거렸다. 넘어지면서 상혁을 벽에 짓누르지 않으려 짚은 원식의 팔 때문에 상혁은 오도 가도 못하고 원식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저…팀장님 팔좀...”

“한상혁씨. 나랑 같이있는거 싫어요?”


아니면, 내가 나쁜 짓이라도 할까봐? 원식이 허리를 숙여 상혁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상혁씨가 너무 그러니까 내가 나쁜 맘을 먹게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상혁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닌데. 상혁씨가 날 나쁜 사람으로 만드네. 원식이 짓궂게 웃으며 상혁의 콧등을 톡톡 건드렸다. 원식이 천천히 붉어진 상혁의 입술을 손끝으로 쓸어내렸다. 



키스 할 겁니다. 숨을 들이키는 상혁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원식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더위와 긴장으로 내뱉는 호흡이 유난히 짧다. 상혁이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낮은 목소리에 쭈뼛 소름이 돋을 만큼 긴장했다. 원식이 혀를 내밀어 상혁의 입술을 핥았다. 앓는 소리를 내며 신음하자 원식이 낮게 웃으며 허리를 강하게 쳐올린다. 벽에 잔뜩 밀어붙여져 원식의 허릿짓을 받아내고 있던 상혁의 고개가 힘없이 흔들렸다.    


“하… 원식씨…밖에…곧 사람들이…….”

“나는 괜찮은데.”

“하...힘들어요. 아.,.흐.”

“후, 조금만 참아요.”

“싫....어...아, 아!”




‘쾅!쾅!’


“계십니까?! 지금 바로 열어드리겠습니다!”



퇴근시간 길이 밀려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보안업체 수리공은 상혁의 상태를 보자 석고대죄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빠졌다. 온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된 상혁이 고개도 들지 못한 체 원식에게 안기다 시피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이쿠. 일행 분은 괜찮으신 겁니까?"

"폐쇄공포증이 있는 친구라 집에 가서 쉬면 될 겁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좀 많이  놀랐나 봅니다."


원식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상혁의 어깨를 단단히 고쳐 잡은 원식은 유난히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졸지에 본인도 몰랐던 공포증까지 생긴 상혁이 원식의 셔츠자락을 비틀어 잡았지만 원식은 모른 척 웃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대는 상혁의 팔을 부축한 원식이 건물을 나섰다. 


팀장님...빨리... 원식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상혁이 숨을 헐떡였다. 셔츠를 움켜쥔 손마디가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다정하기 그지 없는 얼굴로 조수석 문을 열어 상혁을 차에 태운 원식은 느긋하게 앉아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의자에 쓰러지듯 기대앉은 상혁이 눈을 질끈 감은체 호흡을 골랐다. 


“상혁씨 많이 급해요?”

“그걸 꼭 물어보셔야 해요?”


정지선에 멈춰선 원식이 땀에 젖은 상혁의 머리카락을 다정히 쓸어 넘기며 묻자 울컥한 상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씨이.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 열이 올라 눈물까지 그렁그렁해진 상혁이 운전을 하는 원식을 노려보자 곁눈질을 하던 원식이 소리 내서 웃기 시작했다. 흠흠. 입가를 쓸어내리던 원식이 불쑥 그런다. 난 좀 급해서 말입니다. 신호 대기를 받던 원식이 초록색 불이 들어오자마자 엑셀을 거침없이 밟아 차를 몰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차가 원식의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어찌나 거세게 차를 모는지 겁이난 상혁은 주행하는 내내 조수석 손잡이를 붙잡고 있었다. 빠르게 차를 돌려 주차까지 한 번에 끝낸 원식이 씨익 웃는 낯으로 얼이 빠진 상혁의 안전벨트를 손수 풀어준다. 운전하는 내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끙끙대던 상혁이 원식의 손을 찰싹 때리며 눈을 흘겼다. 운전을 그렇게 하는 게 어디 있어요.


“급해서 그럽니다. 급해서.”



원식이 장난스럽게 상혁의 손가락을 붙잡고 키스했다. 분위기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호방한 성격인건 알고 있었지만 사실 상혁은 처음 보는 원식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더 놀랐던 건 그의 그런 모습이 싫지 않다고 느꼈던 바로 자신의 마음. 싫지 않았다. 오히려 노골적으로 자신을 밀어붙이던 원식을 생각하면 손바닥에 찌릿찌릿 전기가 오를 것 같은 착각마저 드는 상혁이었다. 나 원래 이렇게 밝히는 성격이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상혁은 어디 쥐구멍이 있다면 숨어버리고 싶어졌다. 관계에 있어서 늘 담백한 성격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아까 자신의 모습을 통편집하고싶다. 으아아아아아아.





먼저 들어갑시다. 원식이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자 상혁이 집안으로 들어섰다. 주춤거리는 걸음으로 신발을 벗은 뒤 거실로 들어선 상혁이 어색한 표정으로 집안을 둘러봤다. 집안 가득 원식 특유의 향이 배어 있다. 원식씨 냄새다. 상혁은 오늘 낮 회사에서 자신을 놀라게 했던 원식의 장난을 떠올렸다. 사랑하는 사람. 그가 사는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뛰고 설렌다. 멍하게 생각에 잠겨있던 상혁을 따라 뒤늦게 거실로 들어선 원식이 땀에 흠뻑 젖은 셔츠를 펄럭이며 상혁의 손을 잡아끌었다. 먼저 씻죠 우리.



어, 저는.. 원식이 말을 잇지 못하고 쭈뼛대는 상혁의 팔을 잡아끌었다. 원식이 욕실 안에 상혁을 밀어 넣고 샤워기를 돌렸다. 쏴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둘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물이 세차게 떨어졌다. 


“으앗!”


상혁이 떨어지는 물줄기를 피하기 위해 팔을 허우적대며 비명을 질렀다. 원식이 웃으며 버둥대는 상혁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옷이 다 젖잖아요. 원식에게 붙들려 속절없이 찬물을 뒤집어쓴 상혁이 작게 투덜거렸다. 세탁해 줄게요. 차갑게 떨어지는 물이 제 온도를 찾자 욕실 안에 뜨거운 수증기가 차올랐다. 비 맞은 강아지처럼 몸을 떨어대던 상혁이 따듯해진 물 온도에 겨우 몸을 추스르자 원식이 작게 키득거렸다. 겨우 정신을 차린 상혁이 원식을 보며 눈을 흘긴다. 


“재밌어요?”

“하하 네.”


상혁씨 귀여워요. 원식이 물에 젖어 뽀얗게 달아오른 상혁의 뺨에 작게 키스 했다. 투명하게 젖어든 흰색 셔츠위로 상혁의 실루엣이 드러난다. 예뻐요. 예쁩니다 상혁씨. 거듭 상혁의 뺨과 이마에 키스를 퍼붓던 원식이 입고 있던 자신의 셔츠 단추를 하나둘 풀어 내렸다. 물에 젖어 달라붙은 셔츠를 훌렁훌렁 벗어 세면대 위로 벗어던지자 상혁이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고개를 푹 숙인다. 철컥철컥 바지 버클을 풀어내던 원식이 목석처럼 가만히 서있는 상혁의 손을 다정하게 붙잡았다. 


“조금.”

“.....”

“조금만 익숙해집시다.”


원식은 상혁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가슴 위에 얹었다. 이것도 상혁씨 거고 상혁씨도 내껀데, 상혁씨가 이렇게 어색해 하면 내가 상혁씨를 마음대로 만질 수 가 없단 말입니다. 진지한 얼굴로 만질 수 없다며 투덜대는 원식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상혁이 빵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을 마음대로 만질 수 없다며 항의하는 이 사람이 아까 창고에서 나를 몰아붙이던 그 사람이 맞나. 상혁은 풀죽은 강아지처럼 눈꼬리를 늘어뜨린 체 자신을 내려다보는 원식의 모습에 또 한 번 작게 웃고 말았다. 아직은 원식이 어렵다. 하지만 원식도 같은 생각으로 고민하고 있다면... 



상혁이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원식의 어깨너머를 가만히 응시했다. 혹여 자신이 부담스러워 할까 선뜻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걸 아닐까. 자신이 원식이 실망할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것처럼 원식도 내가 실망할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거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상혁이 시선을 올려 원식을 바라봤다. 



머리카락이 흠뻑 젖은 원식이 눈을 마주쳐 온다. 자신의 기분을 조심스럽게 살피는 원식의 모습에 상혁이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이 사람은 정말 나를 사랑하는구나. 사랑하기에 함께 하고 싶고 만지고 싶다. 그런 감정은 상혁에게도 분명히 있는 감정이었다. 나의 옹졸함 때문에 원식까지 힘들게 해서는 안 되는 건데. 나는 무엇이 그렇게 어려워서 이 사람이 날 생각하는 마음도 표현하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슬쩍 눈을 감았다 뜬 상혁이 천천히 자신의 바지벨트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흠뻑 젖어 무거워진 바지를 벗은 상혁이 이내 원식의 바지로 손을 뻗었다. 



“노력할게요.”


상혁이 애꿎은 바지에 시선을 집중하려고 애쓰며 작게 중얼거렸다. 노력할게요. 좀 더 익숙해지도록. 상혁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원식이 상혁의 턱을 부드럽게 들어 올려 입을 맞췄다. 아랫입술을 혀로 느리게 핥아 올렸다가 작게 이를 세워 깨물었다. 아주 느리고 다정한 키스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다리가 얽혔다. 원식이 손을 뻗어 상혁의 다리사이를 더듬자 상혁이 금세 숨을 헐떡이며 원식에게 안겨온다. 원식의 손이 상혁의 애널을 파고들자 상혁이 고개를 젖힌 체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손가락이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앓는듯한 신음소리기 조금씩 열기를 더해간다. 지독스럽게도 느린 애무에 상혁은 전기가 오르는 것 같은 쾌감에 허리를 떨었다. 척추를 울리는 감각에 상혁이 원식의 목에 팔을 두른 체 숨을 내쉬었다. 



원식은 느리면서도 확실한 힘으로 상혁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미간을 찌푸린 상혁으 붉은 입술에서 탄성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원식이 숨을 거칠게 내쉴 때마다 판판한 복근이 수축했다 풀어지기를 반복했다. 원식이 혀를 내밀어 상혁의 쇄골을 핥다가 이를 세워 깨물자 상혁이 가는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비틀었다.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압박감에 괴로워하며 몸을 떠는 상혁의 허리를 한 팔로 감아 안았다. 조금만 참아요. 욕조 벽과 원식의 사이에 갇혀 원식을 받아내고 있던 상혁은 울먹이듯 숨을 내쉬었다. 원식은 상혁의 두 볼과 어깨에 쉴 새 없이 키스하며 끊임없이 허리를 움직였다. 


아프다. 이렇게 아파하는데도 좀처럼 쉽게 갈 기미가 안 보이는 원식이 갑자기 얄미워진 상혁이 원식의 어깨를 꽉 깨물었다. 


“조금만 하.. 참으라면서요.”

“큭큭 미안미안.”

“진짜.... 못됐어.”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한 상혁이 다급한 손짓으로 원식의 목을 끌어안았다. 고통을 수반한 쾌감은 빠르게 상혁을 잠식했다. 서있는 자세가 버거운지 자꾸만 비틀거리는 상혁의 허리를 단단하게 붙잡은 원식이 깊게 삽입을 해오자 상혁이 허리를 떨며 신음을 흘렸다. 원식의 턱을 타고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귓가에 원식의 뜨거운 숨소리가 훅훅 끼쳐왔다. 감당하지 못할 움직임으로 원식이 몇 번이고 상혁의 내벽을 깊게 찔러들었다. 하아, 아.. 아.. 가늘고 높은 신음을 내지르던 상혁의 속눈썹이 쾌감을 이기지 못하고 간헐적으로 떨렸다. 


“상혁씨 이빨자국. 여기랑, 여기. 여기도 있네요.”

“내 등 좀 보고 말해줄래요?”

“하하, 미안. 많이 아파요?”


느리고 뻐근했던 욕실에서의 섹스를 마친 상혁이 뽀송뽀송하게 마른 이불위에 나른하게 엎드려 있었다. 욕실 벽에 원 없이 뭉개진 탓에 상혁의 등이 온통 울긋불긋했다. 원식은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며 방안으로 들어섰다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뒷모습을 확인한 뒤 웃음을 터트렸다.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촉촉하게 젖은 상혁의 머리칼을 다정하게 쓸어 넘긴 원식의 손안에는 작은 연고가 들려있었다.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낸 상혁이 말없이 눈을 감자 원식이 붉게 쓸려 달아오른 상혁의 날갯죽지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연고 발라줄까.”

“음. 끈적일 것 같아서 싫어요.”

“불편하겠지만 오늘은 엎드려서 자.”

“원식씨, 근데 아까.”

“아까?”

“창고에서도 그렇고. 아까도. 음…….”

“음.”

“싫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원식씨도 저랑...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애꿎은 베개를 쥐어뜯으며 더듬더듬 말을 잇던 상혁이 이불속으로 얼굴을 파묻은 체 발을 동동 굴렸다. 용기를 내서 꺼낸 말인데 두서더 없이 뒤죽박죽 오히려 더 부끄러워져 버렸다. 으아아아. 그냥 이대로 잠들었으면 좋겠다. 부끄러움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대던 상혁의 위로 묵직한 무게가 짓눌러왔다. 상혁의 어깨를 한 번에 잡아 몸을 돌린 원식이 상혁의 허리위에 올라탔다. 눈을 동그랗게 뜬 상혁을 내려다보는 원식이 입 꼬리를 올려 씨익 웃었다.



“그럼. 한 번 더 ok?”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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