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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존중

[혁택] Amore 본문

퍝ㅌ/단편

[혁택] Amore

밤비v 2015. 11. 23. 03:03



Amore by. Ryuichi Sakamoto     클릭하면 재생됩니다 


 


 

 

 

눈을 떴을 땐 이미 해가 중천을 넘어가고 있었다. 택운은 식은땀이 흐르는 자신의 목덜미를 문질렀다. 악몽을 꿨던 것 같다. 눈을 떴을 땐 이미 심장이 터질듯 빠르게 뛰고 있었다. 어떤 꿈을 꾸었는지 끝내 기억하지 못했다. 눈을 뜨는 순간 새카맣게 점철되는 기억을 따라오지 못하는 육체의 반응을 느낄 뿐. 꿈의 내용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오늘도 눈을 떴고 꿈은 잊혀진다.


부스스 상체를 일으키자 목이 넓은 셔츠 사이로 한기가 들었다.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오피스텔은 불필요하게 넓었다. 



택운은 손등을 모두 가리는 얇은 셔츠위로 걸칠 무언가를 찾기 위해 옷장을 열었다. 

옷장에 걸려있는 옷들은 모두 흰색이었다. 







열대야가 시작된 밤이었다. 시계 바늘이 여덟시를 향해 느릿하게 움직였다. 거실 창문으로 미적지근한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덥다. 상혁은 등을 돌려 숨막히게 더운 이 공간에서 오롯이 홀로 겨울을 유지하고 있는 택운을 보았다.  


싱크대 앞에서 식재료를 정리하는 동안 택운은 식탁 모퉁이에 턱을 괴고 앉아 상혁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참이었다. 제법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상혁은 그것이 무미건조한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다. 


행동을 색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였다. 물컵을 쥔 창백한 손가락이 얇은 재질의 니트 아래로 앙상하게 드러났다. 

 



새빨갛게 부어 오른 혀를 내민 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눈물이 맺힌 택운의 눈가가 붉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풋고추를 덥석 집어먹은 게 화근이었다.  한번만 물어보고 먹지. 매사에 의욕이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택운은 가끔 이렇게 어린애 같은 호기심을 발휘해 충동적인 행동을 했다. 물론 그것들이 상혁에게 어떤 자극으로 다가오는지 알지 못했지만.   

 


 "아무거나 집어 먹지 말라고 했잖아요."


 "매워."

 

 

생긴 건 고양이처럼 까탈스럽게 생겨서 왜 그래요 형은. 상혁은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택운에게서 알 수 없는 괴리감을 느꼈다.  상혁은 허무하기 그지없는 건반의 떨림을 끔찍하게도 싫어했다. 어디에선가 지나가며 흘려 들었을 피아노 소리였다. 그리고 그건 숨막힐 정도로 택운의 집안을 가득 짓눌렀다. 음색이 질척하게도 택운과 닮아있어 더욱 그랬다.


형, 요즘 가수 노래 좋은 것도 많은데 왜 그런걸 들어요. 


택운은 한번도 자신의 질문에 대꾸한적이 없었다.  평범한 사랑에 관해 생각해 본적이 있었다.  과연 존재하는 이상향인가. 상혁이 기억하는 한 택운은 한번도 타인을 거부한 적이 없었다. 경계하지 않고 다가오는 손길 역시 거부하지도 않는다. 

 

택운이 베어먹고 내려놓은 풋고추 조각을 집어 들어 가만히 혀끝에 가져갔다. 매운걸 좋아하지 않는 상혁이었다. 닿은 혀끝이 아리다.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라고 말해주던 기억을 떠올렸다.  신맛, 짠맛, 단맛, 쓴맛까지도 감지하는 혀는 매운맛은 고통으로 인지했다. 우리는 그 감각을 기꺼이 즐기고 중독된다. 묘한 아이러니. 상혁은 그때마다 택운을 떠올렸다. 고통스러움을 즐기기라도 하듯 그에게 집착하는 자신이. 



"학연이 형이랑 무슨사이에요?" 


"친구."


"친구끼리는 키스 안 해요 형."  

 


묵묵히 앉아서 차가운 물을 조금씩 입에 머금던 택운이 고개를 들어 상혁을 응시했다. 굳게 닫혀있는 택운의 입술이 붉었다.신경쓰지마. 무심한 대답에 상혁은 숨이 막혀오는것 같아 목을 거칠게 쓸었다. 택운을 보면 지독한 괴리감을 느낀다. 당신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내가 느끼고 있다는 걸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연민. 분노. 애증이란 감정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쌍꺼풀이 없는 커다란 눈이 느릿하게 감겼다 뜨였다.  의사표현이 결여된 인간. 상혁은 도저히 참을 수 가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밀리는 반동을 이기지 못한 의자가 둔탁한 파열음을 내며 넘어졌다. 택운은 그저 손에 쥐고 있던 물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을 뿐이었다. 



 

 -


 

 

[형이랑 택운형... 뭐에요?]



학연은 흘러내린 택운의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며 가만히 웃었다. 택운이랑 나는 친구야. 그냥 친구. 학연은 마치 아주 커다란 비밀 하나를 폭로한 사람처럼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목소리에 낮은 집착이 깔려있었다. 방금 전까지 학연과 입술을 맞대던 택운은 이어폰을 귀에 꼽은 체 잠들어 있었다. 잠결에 약하게 벌어진 택운의 입술은 유난히 붉었다. 

 

 

 

 

 


손끝으로 택운의 아랫입술을 천천히 짓눌렀다. 입술이 거친 손길에 쓸려 붉게 달아오른다. 


아파..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뒤로 빼려던 택운을 상혁이 악력으로 가볍게 제지했다.  닿을 때마다 택운의 약한 살결위로 열이 올랐다. 두 손을 무릎위에 모은체 가만히 앉아있는 택운의 머리카락 아래로 새하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가늘고 마른 목덜미. 택운을 내려다 보는 상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붉은 혀가 상혁의 손가락을 천천히 휘감고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형." 



진짜. 안되겠네. 상혁은 택운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며 웃었다. 사람이 이렇게 미치는 걸까.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산산조각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애초부터 당신은 그랬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처음부터 택운은 단 한번도 상혁의 질문에 대답한적이 없었다.      

 


질척하게 젖어 든 손가락을 거침없이 택운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거울처럼 반사되는 택운의 눈동자를 보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따듯한 혀가 상혁의 손가락 끝을 부드럽게 핥아 올렸다. 상혁은 정제되지 않은 감정에 속절없이 휩쓸리는 스스로를 향해 자조했다. 무의미한 행동에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자극당한다. 


어떻게 되어도 좋을 텐데. 혀끝을 검지 손톱으로 긁어내던 상혁은 택운의 짧은 머리칼을 잡아챘다. 



두 입술이 거칠게 부딪혔다. 

 

 

손목을 잡아 택운을 침실로 이끌자 택운이 손목을 잡아 빼며 저항했다. 아파 혁아. 상혁은 씁쓸함이 올라오는 입안을 혀로 훑었다. 택운을 침대위로 거칠게 밀어 넣자 내동댕이쳐진 택운이 상체를 일으켜 상혁의 옷자락을 작게 그러쥐고는 그를 올려다 봤다. 택운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변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상혁은 애써 그것을 무시했다.    

 

 

버클을 만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귓가에 울렸다. 택운은 모든걸 수긍한 표정으로 미동 없이 자리를 지켰다. 거친 동작과는 달리 빳빳한 청바지를 풀어 내리는 손길이 유난히 더디다.  조급한 마음에 자꾸만 헛손질이 나간다. 젠장. 상혁은 고집스레 시선을 내리깐체 욕을 짓씹었다. 택운이 손을 뻗었다. 바지와 속옷을 풀어내 작은 입을 벌려 전혀 발기하지 않은 상혁의 물건을 쥐고 입에 담는다.

  


"후회할 거야." 


"정택운."


"너. 후회할꺼야." 



그날 택운은 보았다.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의 찌꺼기로 일렁이는 상혁의 눈동자를. 입 꼬리를 올려 웃는 그 얼굴은 잘 만들어진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듯 이질적이었다. 공기가 불안정한 습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 확신했다. 곧 비가 올 것 같았다. 




-




몸을 둥글게 만 채로 가만히 누워 숨을 골랐다. 택운이 감았던 눈을 몇 번이고 깜박였다. 허공을 응시하는 눈동자. 택운의 시야에 들어온 상혁의 얼굴이 뿌옇게 흐려졌다 까맣게 점멸하기를 반복했다. 상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문가에 기대 서 있었다. 방안에 텁텁한 정사의 여운이 가득했다. 누워있던 택운이 몸을 조금 더 작게 움츠렸다. 



“밥 먹어요.”



헝클어진 얼굴을 한 택운이 몸을 일으켰다. 맨다리가 바닥에 닿자 허벅지 사이로 끈적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대답 없이 상혁을 스쳐 화장실로 걸어가는 택운의 뒤로 그의 시선이 느리게 따라붙었다. 미지근하게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 택운이 미동 없이 서 있었다. 고개를 든 체 떨어지는 물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택운의 머리카락이 흠뻑 젖어들었다. 문은 닫혀있지 않았다. 



상혁이 바닥에 떨어진 스웨터를 주워들자 코끝으로 택운의 체취가 스친다. 얼굴을 깊게 파묻자 질식할 듯 뜨거운 숨이 얼굴에 쏟아졌다. 천장에 달아놓은 필라멘트 전구가 위태롭게 깜박이고 있었다. 서글픈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불협화음으로 날카롭게 어긋난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둘의 사이를 갈랐다. 감은 눈꺼풀 위로 빛이 쏟아져 내린 시야가 온통 붉었다. 

 

 








fin..

 

 




태긔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노래를 듣는다는 인터뷰를 봤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번 들어봤더니 이런 글이 나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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