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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존중

그 카페 이야기 본문

퍝ㅌ/연성

그 카페 이야기

밤비v 2015. 11. 24. 23:28


“곧 졸업인데. 무슨 이유라도 있나?”

“아니요, 그런 건 없습니다.”  

 

걱정스러운 담임교수의 목소리에 자꾸만 시선이 문 쪽으로 향한다. 이런 불필요한 친절은 부담스럽다. 택운은 인생의 타이밍에 관해 논하는 교수의 얼굴 앞에 종이를 들이밀고 싶은 충동을 조용히 참았다. 


밤낮없이 불면증으로 침대를 뒤척이게 만들던 열대야가 물러가고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가디건을 걸쳐야 할 만큼 서늘해졌다. 어거지로 교수의 도장을 받아 휴학신청서를 낸 택운은 제법 쌀쌀한 공기에 어깨를 움츠리며 학교 정문을 나섰다.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원래 택운은 결정을 내리고 행동에 옮김에 있어서 깊게 생각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벌써 소문이 돌았는지 택운의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미련 없이 핸드폰을 끈 택운은 집으로 가던 방향을 틀어 길을 나섰다. 빨리 일자리를 찾아야겠다. 집에 휴학사실을 알리면 용돈이 끊길 것 같았다. 






들어가기 전에 봤던 음영으로 새겨진 밋밋한 간판에는 cafe n' bar 라고 적혀있었다. 유리벽에 떨어질듯 말듯 아슬아슬 붙어있던 구인광고를 뜯어낸 택운이 들어간 곳은 모던한 분위기의 칵테일 바였다. 거친 느낌의 회색 콘크리트 벽과 낮은 조명, 그리고 원만한 곡선을 그리는 강렬한 색감의 붉은 카운터까지. 이런 장소와 특별한 인연이 없던 택운이 보기에도 가게는 제법 괜찮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가게를 들어서자 카운터 뒤편에 서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회색 니트에 머리카락까지 회색으로 염색한 남자는 마치 자고 일어난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더니 택운과 눈이 마주치자 생긋 웃어보였다.  내심 미모의 여자 주인을 기대했던 택운은 가게 안을 들어서다 말고 멈칫 거렸다. 


택운이 바람에 살짝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한 뒤 밖에서 떼어온 종이를 말없이 들이밀었다. 그러자 남자가 슬쩍 눈웃음을 짓는다. 잠시 이쪽으로 앉으세요. 커피 괜찮죠? 유리잔을 닦던 중이었는지 남자는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으며 질문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택운이 카운터 끄트머리에 놓여있는 스툴에 걸쳐 앉자 커피를 내리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남자가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로 택운에게 말을 걸어왔다.


“학교 다녀요?”

“휴학했어요.”

“아아.”


크지 않은 공간에 열 개가 체 되지 않는 작은 테이블들이 의자와 함께 이리저리 놓여있었다. 가게 한 구석에서 흐르는 일렉트로닉을 가만히 듣고 있던 택운이 불쑥 입을 열었다. 


“회색이네요.”

“아아, 염색했어요. 좀 튀죠?”


주어, 동사 전부 빠진 질문에 학연은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학연의 대답에 택운은 딱 두 가지 대답만 고집했다. 네 그리고 아니요. 말이 없는 성격이란 걸 알아채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기에 웃음기 없는 얼굴로 묵묵히 학연을 응시하는 택운이 조금은 난감해진 학연이었다. 안 그래도 조용한 가게를 혼자 지키기가 버거워 함께할 직원을 구하기 위해 붙여놓은 광고였는데 아무래도 구인광고를 보고 들어온 이 사람은 그리 좋은 대화상대가 되어주지는 못할 것 같았다. 



돌려보낼까. 학연은 잠시 고민했다. 이미 광고지까지 통째로 떼어와 자신에게 들이밀던 택운에게 직원을 구했다는 변명은 좋은 핑계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쌍꺼풀 없는 크고 기다란 눈. 검은 눈동자안에 자신의 모습을 모두 담은 체 눈을 마주쳐 온다.  마주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직한 눈이다. 무엇보다도 얼굴이 제법 마음에 든다. 바에서 일하는 직업상 남자 손님보다 여자 손님이 많기 마련인데 카운터 뒤에 세워놓아도 부족함이 없을 키와 다부진 몸매까지. 마음속으로 택운의 외모에 점수를 매기던 학연은 자신의 감을 한번만 더 믿어 보기로 다짐했다.   


기본적인 통성명을 주고받은 뒤 학연이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어색하지 않은 침묵이 둘을 감쌌다. 엷게 내린 커피와 혹시나 하고 올려둔 각설탕 두어 개를 함께 내어주자 사양하지 않고 모두 커피 잔 안으로 털어 넣는 그를 보면서 또 한 번 작게 웃고 말았다.  매력 있다. 무뚝뚝한 얼굴로 커피를 휘젓는 그에게 호기심이 인다. 신기한 것은 탐구해 보는 게 마땅하다. 


“출근은 다섯 시 반까지. 언제부터 가능하세요?”

“내일부터라도 가능합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택운의 반응에 학연이 싱긋 웃었다. 오모오모. 말 없는것도 뭔가 매력있어. 뜨거운 커피를 조심스럽게 마시는 택운을 본 학연은 사람 보는 눈만큼은 나쁘지 않다고 자부하며 슬쩍웃었다. 삼일정도 트레이닝 할 테니까 옷은 깔끔하게 입고 오는 게 좋겠고. 아 - 지금처럼 입어도 예쁠 것 같아요.  음. 그리고 더 일찍 오면 밥 같이 먹으면 되는데... 낮에 일하는 사장님도 소개시켜 드릴 테니까 내일은 다섯 시까지 오세요. 알았죠? 기본적으로 고용인이 해야 할 말을 기계처럼 쏟아내자 택운이 머그잔을 손에 든 체 학연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럼 잘 부탁할게요. 택운씨."


작게 고개를 끄덕인뒤 시선을 내리깔고 유리병 속에서 각설탕 하나를 꺼내 집어넣는 택운의 행동에 학연은 또 한 번 싱긋 웃었다. 





“여보세요. 식아 나 알바생 구했다?”




-



 

 "원식이형. 일어나요!"

 "..."

 "혀어엉! 이러다 늦겠어요."


벌써 십분 넘게 깨워대는데도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않는 원식을 보며 애가타고 속이 터지는 건 상혁 하나뿐이다. 일어나기만 하면 깨운 사람이 무안해질 정도로 멀쩡해지는 원식이었지만 일어나기까지가 너무 고역이다. 주말이라고 해서 카페가 늦게 오픈하는 건 아닌데. 이미 한 시간 전에 일어나 먼저 모든 준비를 마친 상혁은 발을 동동 굴렀다. 평일이야 등교시간에 쫒기는건 상혁 또한 마찬가지라 늘 출근시간이 늦은 원식을 들여다볼 여유도 없이 뛰쳐나가곤 했는데.. 이렇게 불러도 안 일어나는데 알람이 들리기는 하는 거야?


원식과 동거 아닌 동거를 시작하고 함께 맞는 첫 주말이었다. 닭털이 날리다 못해 닭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연애 삼개월. 그리고  각방 쓰는 동거 일주일차 커플. 굳이 자신과 원식의 관계를 표현하자면 그러하였다. 사건은 일주일전, 고3인 상혁이 원식의 집에 쳐들어오면서 시작됐다. 상혁은 원식의 집이 자신의 집보다 가깝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다. 부모님과 원식이 말렸지만 결국 막무가내로 집을 나온 상혁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어르고 달래고 화도 내보았지만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 상혁에게 원식은 결국 졸업할 때까지 각방을 쓰는 조건으로 상혁과 동거 아닌 동거를 시작하고 말았다. 사실 각방선언을 한 원식에게 왜냐고 따져 물을 만큼 상혁은 당돌하지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허락할 줄 몰랐기에 더욱 놀랐다. 한눈에 반해 일방적으로 쫓아다닌 게 육개월, 거기다 몇 개월을 더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게 겨우 일 년 전 일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오랜 짝사랑 끝에 자신의 마음을 받아준 상혁의 첫사랑은 모든 게 새롭고 서툴다. 


그렇게 시작한 동거 일주일째. 상혁은 새삼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받는 기분이었다. 밤늦게 퇴근하는 원식 때문에 같은 집에 살면서도 얼굴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물론 상혁도 바빴다. 매일 야간자습이며 연습에 시달리면서도 주말을 생각하며 한주를 버텼다. 함께 일어나 카페로 출근해 원식과 둘만의 시간을 보낼 생각에 잔뜩 들떠있었는데 정작 카페 사장은 일어날 생각을 안 하니 상혁은 속이 터진다. 늘 순둥순둥 하다는 소리만 듣고 살았는데 삐뚤어질 테다!


"아! 형! 진짜! 난 몰라!"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던 상혁이 원망 섞인 눈빛으로 침대와 한 몸이 되어있는 이불덩어리를 노려봤다. 에라, 모르겠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원식의 이불자락을 훌렁 벗겨내자 트레이닝복 바지만 입은 채 잠들어있는 원식이 잘빠진 몸을 꿈틀대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다. 상혁이 원식의 어깨를 잡고 짤짤 흔들자 엷은 갈색 피부위로 느껴지는 근육이 매끈하게 잡혀온다. 상혁은 그만 따듯한 체온이 손바닥에 닿아오자 마음이 살짝 누그러졌다. 아무래도 이 남자는 몸매가 너무 좋다. 


"원식이 혀엉. 같이 출근해요 네?"


원식이 일어날듯 몸을 뒤척이는가 싶더니 상혁의 팔목을 잡아채 엄청난 힘으로 잡아당겼다. 상혁이 꽥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원식의 위로 엎어졌다. 십대의 날렵한 반사 신경으로 겨우 정면충돌은 면했지만 잠든 사람주제에 힘이 장사다. 상혁은 도무지 일으켜 지지 않는 몸을 허우적거렸다. 이불속에서 훈훈하게 데워져 있던 원식의 맨몸이 옷 위로 느껴지자 온돌처럼 따끈해서 그게 또 기분이 좋다. 


으으, 무거워. 뭐야 복수하나? 잠깐 사이에 기우뚱 하며 상혁의 몸이 뒤집힌다. 얼결에 침대에 눕게 된 상혁은 숨이 막혀 키득거리면서도 원식의 어깨는 장난스럽게 두드렸다. 



쿵, 쿵. 규칙적으로 뛰는 원식의 심장소리를 가슴으로 전해 들으니 왠지 쑥스러운 기분이 든다. 상혁은 없는 애교를 쥐어짜 원식의 귓가에 대고 웅얼거렸다. 형 일어나세요.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체 색색 고른 숨을 내쉬던 원식이 갑자기 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으스러질 듯 상혁의 허리를 더듬어 대기 시작했다. 어색하게 몸을 꾸물대던 상혁이 펄쩍 뛰었다.  



웃으면서 원식을 밀어내면 되는데 당황한 나머지 몸이 뻣뻣하게 굳은 체 목소리까지 떨려나온다. 혀엉 왜 그래요. 장난으로 웃어넘기기엔 자신을 움켜쥔 체 허리를 짓이기듯 쓸어내는 원식의 손길이 너무 노골적이다. 철컥철컥. 상혁의 목에 얼굴을 깊게 파묻은 원식이 상혁의 벨트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형 장난치지마세요. 상혁은 그만 눈앞이 깜깜해졌다. 


 '퍽'


상혁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원식을 발로 깠다. 침대 끝으로 나동그라진 원식이 발작하듯 몸을 벌떡 일으켰다가 까인 옆구리의 고통 때문에 허리를 잡고 뒹굴었다. 원식이 지렁이처럼 몸을 꿈틀대자 상혁이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순간 알람시계와 핸드폰이 쩌렁쩌렁 울어댄다.  



아씨! 깜짝이야!  충격으로 벌렁거리는 심장위에 손은 얹어 꾹꾹 누르던 상혁이 혼을 쏙 빼놓을 만큼 시끄럽게 울려대는 시계와 핸드폰의 알람을 차근차근 죽여 놨다.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네.  시간은 아홉시 삼십분. 이 시간까지 집에 있어 본 적이 없던 상혁은 갑자기 어이가 없어졌다. 카페오픈은 아침 열시. 지금 시각 아홉시 삼십분. 일어나자마자 가게로 출근 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출근하기 직전까지 자겠다는 건지 도저히 의도를 모르겠다.


"야! 이 변태야!"

“어윽..한상혁..너 임마...”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원식은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상황에 바보 같은 웃음을 흘리며 까치집이 된 머리카락을 벅벅 긁었다. 까인 옆구리의 통증이 올라오는지 금방 허리를 움켜쥐고 끙끙대긴 했지만. 뭐야, 나 엿 먹이려고 안 일어난 거였어? 


거짓말처럼 멀쩡해진 원식의 상태에 또 한 번 어이가 없어지다가도 옆구리를 움켜쥐고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에 왠지 더 화가 난 상혁이 속사포 랩보다 빠르게 원식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리고 원식은 방에서 쫓겨났다. 화장실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원식은 직감했다. 오늘은 왠지 평탄하지 않은 하루가 될 것 같다고. 

 








fin.






*

아마도 처음쓴 빅쮸글이 아니었나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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