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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택] 프롤로그 본문

퍝ㅌ/연성

[혁택] 프롤로그

밤비v 2016. 2. 13. 01:33

 

 

 

 

이불 속에 파묻혀 몸을 뒤척이던 남자는 팔을 뻗어 탁상 위를 더듬었다. 좀처럼 손에 닿지 않는 핸드폰이 경박한 알림 소리를 내며 울었다. 감은 눈으로 탁상을 더듬어 핸드폰을 손에 쥔 남자는 감았던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눈을 떴다. 남자의 하루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남자는 잠이 가시지 않은 듯 연신 미간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쥔 손을 느리게 움직였다. 가장 먼저 보이는 화면 위로 그 달의 스케줄이 떠 있었다.

 

7월의 첫째 주. 붉게 적힌 숫자 아래는 아이의 생일이 있었다.

 

남자는 방안에 앉아 집안을 조용히 움직이는 인기척을 들었다. 그리고 멀지않은 욕실에서 흐르는 물소리도.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정확히 8년 전에 끊었다. 그는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그날 이후로 하지 않게 된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아마 자신이 할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도. 아마 그 모든 것을 제하고도 아이는 바르게 컸을 것이다. 곧 인기척 대신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침대 맡에 물끄러미 걸터앉은 남자는 다시 그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는 왠지 마음을 편하게 했다. 어쩌면 자신은 적합한 보호자가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혹은 정상적인 가정이었다면. 택운은 생각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슬슬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이내 끊어진 물소리에 택운은 자신의 방문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때의 자신은 모범적인 어른처럼 보이고 싶었던가.

 

“8만원만 주세요.”

 

노크소리 없이 교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아이가 방안에 들어섰다. 아이는 또래에 비해 키가 컸다. 택운이 깨닫기도 전에 홀로 나무처럼 자라 어느덧 자신과 시선을 마주할 만큼 훌쩍 커버렸다. 아이는 성숙했지만 아직 어렸다. 아직 어려서, 택운은 훌쩍 지나간 시간을 향해 그렇게 변명했다.

 

상혁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고집스럽게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나름의 반항이자 자신에게 불만을 표출하는 상혁만의 시위였지만 택운은 그것을 모른 척 했다. 길지 않은, 아마 이번에도 아이 홀로 납득하고 끝날 투정이었다.

단정하게 갖춰 입은 교복은 풀린 단추 하나 없이 완벽했다. 차분한 검은 머리카락이 새하얀 이마를 덮고 있어 그 아래로 도드라지는 깊은 눈매에 그늘이 서렸다. 손가락으로 검은색 가방끈을 움켜쥔 상혁은 미동 없이 방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방안에 있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기에 방안의 공기는 참을 수 없는 정적을 토해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상혁은 눈을 감은체로 소리 없이 숨을 들이켰다. 신은 왜 인간에게 가져서는 안 될 선악과를 주었을까. 처음부터 주지 않으면 되잖아. 상혁은 그렇게 입안에서 느껴지는 택운의 체취를 혀끝으로 굴렸다.

 

“여기.”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테이블에 내려놓은 택운은 말없이 몸을 일으켜 탁자 위에 놓인 지갑을 집어 들었다. 휴고 보스의 로고가 박힌 짙은 남청색 지갑을 집어 들자 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던 상혁이 고개를 들어 택운의 손가락을 눈으로 쫒았다.

하얗고 긴 손가락이었다. 상혁은 어릴 적, 그러니까 자신이 택운의 가슴께 정도 오던 나이였을 때 저 커다란 손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던 체온을 기억한다. 언제부턴가 택운의 커다란 손은 더 이상 자신의 머리를 어루만져주지 않았다. 언제 부터였을까.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조심해서 다녀와. 택운은 손끝에서 지폐 몇 장이 빠져나가는 감각을 마지막으로 상혁에게서 등을 돌렸다. 출근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택운은 읽어야할 메일이 더 남아있었다. 오늘 가정부가 오기로 한 날이었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세탁소에 보내야할 옷을 정리해 놓아야 할지도 몰랐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등 뒤의 아이는 방 밖을 나가는 대신 물음을 던졌다. 택운은 대답대신 테이블 위에 있던 안경을 집어 들었다. 아직 넥타이는 매지도 않았는데 목 언저리가 답답해져왔다. 적지 않은 그 돈이 왜 필요한지 궁금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아님을 알았다.

 

택운은 콧등에 안경을 걸치고도 한참이나 돌아서기를 망설였다. 자신과 전혀 닮지 않은 이 아이가 버겁게 느껴진다. 지켜볼 새도 없이 성장해서 어른 흉내를 낸다. 택운은 자신과 같은 눈을 하고 있는 아이를 매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지폐를 움켜쥔 상혁의 손마디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곤 굳은 어깨를 한 택운의 등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 시선은 택운의 어깨를 지나 그의 허리선을 거침없이 훑었다. 그의 앞에선 이런 눈빛은 할 수 없다. 그가 어깨를 굳히는 것 하나만으로 상혁은 택운의 감정을 쉽게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리곤 서둘러 수업료를 핑계로 적당히 잔머리를 굴리는 학생의 옷을 입고야 마는 것이었다.

 

 

“학원에서 특강 수업료 내래요. 사실 7만원인데 만원은 간식 사먹을게요. 그래도 되죠?”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

 

 

택운은 그제야 자신을 응시하는 상혁과 시선을 마주 할 수 있었다. 눈에 띄도록 풀어진 택운의 태도를 보며 상혁은 눈이 휘도록 웃으며 다녀오겠노라 인사 한 뒤 방문을 나섰다.

 

 

“아, 오늘 도우미 아주머니 오시는 날이에요.”

 

“응. 방금 생각났어. 저녁에 보자.”

 

 

부산스럽게 집밖을 나서는 상혁의 표정은 무섭도록 굳어있었다. 착한 아이로 남아야했다. 나쁜 아이라는 게 들통 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상혁은 자신이 만든 착한 아이 가면에 조금씩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결국 자신은 평범하게 자랄 수 없었던 것일까. 까만 눈동자에 수많은 감정이 뒤엉켜 일렁인다. 유리알 같은 눈동자 위로 떠오른 감정은 원망이었다.

 

 

 

‘크리스마스 이제 끝났는데... 언제까지 착한 아이로 있어야 해요?’

 

 

 

 

 

 

 

 

 

*

앞뒤없이 시작한 글의 프롤로그입니다 ㄷㄷ

키워서 잡아먹히는 택운이가 보고싶어서 시작했는데 글이 산으로 갔습니다 (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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