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취향의 존중

[랍콩] 구미호 반려전 2 본문

퍝ㅌ/장편

[랍콩] 구미호 반려전 2

밤비v 2015. 11. 30. 21:31


남자의 의식이 천천히 돌아오고 있었다. 원식은 그 느리고도 조용한 과정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말간 미간이 찡그려지고 긴 속눈썹이 잘게 떨린다. 눈꺼풀 속에 감추어진 새카만 눈동자가 드러나는 순간은 경이로웠다. 원식은 처음 홍빈을 발견한 날을 떠올렸다. 분명 여인이라 의심치 않았던 가는 몸매와 얇은 허리 그리고 작은 손발까지. 사내의 옷을 입은 그가 상상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어찌하여 여인의 옷을 입고 산에 쓰러져 있었는가. 의문이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작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척이는 홍빈에게 시선을 주던 원식은 이것을 가슴속 깊이 묻어두기로 했다. 이유를 안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원식은 타인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으로 만족감이나 우월함을 느끼는 부류들을 경멸했다. 어찌되었건 복잡한 것은 딱 질색인 원식이었다. 


공기방울이 서서히 수면위로 떠오르듯 깨어난 홍빈은 좀처럼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렸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 내려다보는 남자가 있었다. 무언가 말을 하려 입술을 달싹이던 홍빈의 눈빛에 당황스러움이 깃들었다. 목소리가 쉬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차리려 무던히 노력하며 잔뜩 갈라진 목을 잠시 가다듬자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홍빈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위험하기 전에 발견하여 참으로 다행이오.”

“...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할지.”

“지금은 몸을 회복하는 것을 수선으로 생각하시오. 큰 상처를 입었소.”



홍빈은 대답대신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좀처럼 가누지 못하는 홍빈을 원식이 허리를 감아 안아 부축했다. 어깨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미간을 찌푸리던 홍빈은 원식의 도움으로 겨우 벽에 기대어 앉을 수 있었다. 원식은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들은 잠시 마음 한구석에 접어두기로 했다. 원식이 작은 쟁반에 놓인 한약그릇을 홍빈에게 건넸다. 약방어르신이 보내주신 약이라오. 잠시 원식의 얼굴을 살피던 홍빈은 잠자코 약사발을 받아들었다. 진한 약냄새가 코를 찔렀다. 쓴 기운에 작게 얼굴을 찌푸린 홍빈이 눈을 질끈 감고 약을 들이켰다. 


코를 막고 얼굴을 찡그리며 괴로워하는 홍빈의 입안에 작은 당과가 쏙 들어왔다. 금세 달큰한 향이 입안에 퍼지기 시작하자 홍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쟁반위에 두었던 당과를 홍빈의 입에 넣어준 원식이 작게 웃었다. 다정한 웃음에 홍빈이 입안에서 당과를 굴리며 마주 웃는다. 다정한 웃음에 마음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원식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웃음을 짓는 홍빈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잔뜩 휘어지는 눈꼬리와 볼록하게 나온 볼이 천진하기 그지없었다. 



빈 약사발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 원식이 방을 나서려다 말고 잠시 머뭇거렸다. 홍빈이 정신을 잃은 동안 원식이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긴 했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된 목욕을 하고 싶어 할 거라 생각한 탓이었다.  



“몸을 씻겠소?”



원식이 의식이 없는 동안 홍빈의 몸을 닦아줬다는 사실을 모르는 홍빈은 덤덤한 원식의 말투에 얼굴을 붉혔다. 홍빈의 대답에 원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밖을 나갔다. 물을 덥혀 온도를 맞춘 원식이 홍빈을 부축했다. 홍빈의 어깨를 단단히 부축하는 원식의 몸에서는 맑은 측백나무의 향이 났다. 월묘 할아범의 약이 참으로 효과가 좋은 모양인지 어깨의 통증이 한결 잦아든 홍빈은 원식이 갈아입을 옷가지와 깨끗한 천을 가지러 나간사이 옷을 훌훌 벗어재꼈다. 치마와 저고리로 만든 옷은 매듭을 잡아당기는 것만으로도 쉽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넝마조각이 된 자신의 치마와 저고리를 집어 들던 홍빈은 잠시 고민했다. 여인의 옷을 입고 있었으니 필시 여인으로 오해할 터였다. 그러나 홍빈은 자신을 대하던 원식의 태도를 떠올리며 잠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깨에 입은 상처에 단단한 붕대가 감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남자인 것을 숨길 필요는 없었다. 홍빈은 어색한 표정으로 나무 욕조 통안으로 들어갔다. 따듯한 물이 피부에 닿아오자 금세 몸이 나른하게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아...살 것 같아. 머리끝까지 잠겨들었다 물위로 솟아오르길 반복하던 홍빈은 온몸으로 환호했다. 그 사이 원식이 새 옷을 가지고 들어섰다. 잠시 물장구를 치던 홍빈을 멍하게 보던 원식이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팔을 쓰기 힘들터니 도와주겠소.”



원식은 말없이 홍빈의 머리카락에 더운물을 부었다. 순식간에 젖어든 홍빈의 머리카락이 원식의 손안에서 넘실거렸다. 부드러운 연갈색의 머리카락이 원식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흘러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조심스러운 원식의 손길이 홍빈의 목과 귀를 스치자 민망한 기분에 홍빈이 수면을 튕기며 장난을 쳤다. 


잔잔한 물소리만이 조용한 침묵을 메우고 있을 뿐이었다. 홍빈은 안정감을 느끼며 원식의 손길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씻기를 마친 원식이 욕조에 약초가 우러난 뜨거운 물을 채웠다. 씁쓸하면서도 은은한 향기에 홍빈은 무의식중에 물을 손에 담아 코를 킁킁댔다. 아이 같은 홍빈의 행동에 원식이 슬쩍 웃음을 지었다. 


목향풀을 우려낸 물이오. 원식이 향이 나는 물을 신기해하는 홍빈에게 설명했다. 목향풀 주머니는 약초와 풀을 캐러 다니는 상혁이 원식에게 선물해준 것이었다. 사내가 향이 나는 물로 씻을 일이 어디 있냐며 구석에 쌓아 두었던 것을 오늘에야 쓰게 된 참이었다.


오랜만에 따끈한 물에 오래도록 목욕을 한 홍빈은 원식의 도움으로 깨끗한 옷을 갈아입은 뒤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목욕재개를 하고 나니 홍빈의 외모가 더욱더 빛을 발했다. 온기를 머금어 혈색이 도는 청초한 두 뺨과 말간 피부, 그리고 긴 속눈썹을 내리깐 체 젖은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모아 닦아내는 홍빈의 모습은 원식이 할 말을 잃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깨의 상처에 무리가 오는 듯 아파하는 홍빈에게 원식은 말없이 상처에 약을 바르고 깨끗한 붕대로 어깨를 단단하게 감았다. 백옥같이 하얀 피부위에 살이 헤집어지고 피가 고인 상처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상처는 나을 것이나 흉터는 그 자리에 남을 것이었다. 단단하게 매인 붕대위로 홍빈의 상처를 쓸어내리던 원식은 낮은 탄식을 내뱉었다. 


“저어...”

“큼. 그럼 쉬시오.”



말없이 원식의 손에 몸을 맡기던 홍빈은 원식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끼고 어색함에 크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방안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정신을 차린 원식은 홍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방을 나가버렸다. 아... 홀로 남은 홍빈이 벗어두었던 윗옷을 멍하게 추슬러 입었다. 주섬주섬 자리에 누운 홍빈은 이불속에 얼굴을 파묻고 누워 발을 동동 굴렀다. 원식이 자신의 맨몸을 보고 있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웠다. 인간이라곤 자신을 자식처럼 키워주었던 주지스님이 유일하였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훈훈하게 데워져있던 방안이 원식이 자리를 나가자 방안이 썰렁해졌다. 자신을 구해준 은인이거늘 너무 차갑게 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홍빈이 울상을 지었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보기도 전에 자리를 뜨다니... 



옆방으로 건너온 원식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홍빈의 부드러운 피부를 스쳤던 감촉이 아직까지 손끝에서 느껴지는듯 하였다. 주먹을 꽉 감아쥔 원식은 이불도 펴지 않은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내일 아침 최대한 일찍 산을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팔베개를 하고 누운 원식의 눈앞에 홍빈의 새하얀 맨 어깨가 아른거렸다. 


-


입하立夏가 지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날씨가 후덥지근했다.  움츠리고 있던 풀잎들이 본격적으로 만개하는 계절이 다가왔다. 마을에서는 일손을 모아 벼농사가 한창이었다. 홍빈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잡초를 뽑아내면서 봄에 심었던 참외가 꽃을 활짝 피운 것을 흐뭇한 얼굴로 보았다. 단물이 뚝뚝 흐르는 참외를 유난히 좋아하는 홍빈은 벌써부터 손수 키운 과일이 열매를 맺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백련사로 올려지는 보시布施는 이맘때를 기준으로 풍성해 지고는 했다. 겨우내 먹던 감자와 보리밥대신 싱싱한 나물과 과일들이 주린 배를 채워줄 참이었다. 



한나절동안 절 뒤편에 있는 텃밭을 일구던 홍빈은 유난히 시끌벅적한 백련사의 분위기에 고개를 기웃거렸다. 하루 종일 절 안이 시끌벅적하다 싶었더니 초파일을 앞두고 탑돌이를 하려는 신도들이 몰린 탓이었다.  


절 마당까지 나오는 것이 좀처럼 허락되지 않던 홍빈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인간이 되고서도 절 안쪽에서만 머물렀었기 때문에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절 내를 뛰어다니자 궁금증이 일었던 탓이었다. 결국 근처로 나가지는 못하고 주변을 서설이다 법당 모퉁이에 숨어 백련사 승려들의 뒤를 이어 탑 주변을 도는 사람들을 몰래 지켜보던 참이었다. 늘 백련사에서 보던 잿빛이 아닌 오색으로 물든 머리쓰개를 걸친 여인들과 두루마기를 차려입은 선비들의 모습을  처음 보는 홍빈은 입을 쩍 벌렸다. 여인의 손을 잡고 탑을 도는 아이들은 물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경건한 마음으로 소원을 비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저리 많은 인간들은 처음보아…! 홍빈의 새까만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어허. 네 이놈 빈아, 무엇을 그리 보는 게냐.”

“스님! 절 마당에 사람들이 엄청 많이 있어요!”

“허허. 그것이 신기한 것이냐. 꼬리가 다 튀어나오지 않았느냐.” 



홍빈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스님을 올려다보며 절 앞마당을 가리켰다. 홍빈을 찾아 절 안을 돌아다니던 주지승은 홍빈의 머리위로 튀어나온 짐승의 귀와 꼬리는 보고는 혀를 찼다. 인간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아 조금만 방심을 하면 본모습이 드러나기 일쑤였다. 두발로 걷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을 때는 늘 넘어져 우는 바람에 마음 쓰이게 하더니 날이 풀리고 몸이 익숙해지니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나다니는 것이 여간 근심스럽지가 않다. 천성이 들짐승이요 본성이 여우라 그것을 금하는 것 또한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니 주지는 그저 마음 졸이며 홍빈을 쫓아다니는 것이 하루의 일과가 되어버린 참이었다. 담요도 이불도 아닌 천 조각을 홍빈의 머리위에 뒤집어씌운 주지승은 홍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금세 시무룩해진 홍빈이 천의 끝자락을 움켜쥐었다.



"빈이도 저들과 함께 놀고 싶어요……."



동자승들이 입는 잿빛 옷을 지어 입은 홍빈의 저고리 아래로 갈무리 되지 못한 연갈색의 여우꼬리가 삐죽 튀어 올랐다. 홍빈은 마음대로 들어가지 않는 꼬리가 얄미운 듯 푹신한 털을 쥐어뜯으며 애꿎은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감정의 기복이 커질 때마다 본모습이 드러났다. 희노애락이 분명한 아직 어린 여우가 감정을 갈무리 하는 일이란 쉽지 않음이 분명했다. 심통스러운 표정이 못내 귀여워 웃음을 짓는 주지승이 홍빈의 작은 손을 쥐었다. 



품이 큰 옷이라면 숨길수도 있을 터. 멀뚱히 서서 무심하게 탑 주변에 시선을 주던 주지승은 낮은 감탄소리를 내었다. 품이 크고 꼬리를 가릴 수 있는 여인의 옷, 치마는 넓고 폭이 크니 홍빈이 설령 꼬리를 드러낸다 하더라도 테가 나지 않을 터였다. 홍빈의 손을 꼬옥 잡고 있던 주지승은 탑돌이를 하는 여인들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빈아, 저기 저 여인이 입은 옷이 보이느냐. 저 옷을 입으면 꼬리가 보이지 않을 것 같구나. 하지만 여인의 옷을 사내가 입을 수는 없는 법이 아니겠느냐 빈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예! 스님 제가 여아가 되면 되는 것이지요?  그래, 빈아. 주지승은 금세 신이 나서 금방이라도 앞마당으로 달려나갈듯 발을 동동 구르는 홍빈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


원식의 옷을 받아 입은 홍빈은 어색한 기분이 들어 입고 있던 옷을 한참이나 만지작거렸다. 너무 오랜만에 사내 옷을 입게 되어 그런지 유난히 자신의 체격이 외소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원식과 마주보고 이야기 할 적에는 느끼지 못했으나 원식의 옷은 홍빈에게 너무 컸다. 깨끗한 무채색의 저고리와 바지는 소매와 바짓단을 두 번이나 접어야 할 만큼 품이 길었다. 원식의 옷을 껴입고 엉거주춤 밖으로 나온 홍빈은 자꾸만 벌어지는 저고리 사이를 한손으로 고쳐 매었다. 



비록 한평생을 백련사 깊은 산기슭에서 자랐다고 하지만 홍빈에게도 기본적인 상식은 있었다. 

예를 들면 구미호에 관한 이야기 같은 것들에 관해서. 


구미호가 인간으로 화한 모습은 어느 미인이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고 하였다. 그들이 아름다운 외모로 인간을 홀려 돈을 갈취하거나 생명을 앗아갔다는 이야기는 홍빈의 귀에 박히도록 들어왔다. 16살이 되던 해 주지스님과 홍빈이 백련사를 떠나야 했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 아니었던가. 홍빈의 미색이 승려들의 수행을 방해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보통이라면 자신의 미모에 반해야 하는 것이 정상일 텐데 홍빈은 혹여 자신이 구미호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외모를 지닌 것이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난 홍빈의 방에 여벌의 옷을 놓아주고 요깃거리와 따끈하게 덥힌 약사발을 들여놓은 원식은 홍빈이 무어라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바람같이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홍빈은 어쩔 수 없이 홀로 그나마 성한 왼손으로 어색한 수저질을 하여 죽을 뜨고 미지근하게 식은 약사발을 들이켜야 했던 것이었다. 



고약한 쓴맛에 냉큼 당과를 입안에 집어넣고 굴리던 홍빈은 방 한쪽 구석에 돌돌 말려있는 자신의 옷을 집어 들었다. 피가 묻어 얼룩덜룩한 저고리와 치마는 이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였다. 연녹색의 치맛단은 어두운 밤 홀로 숲속을 헤매느라 나뭇가지에 온통 찢겨 있고 옥색 저고리 역시 섬뜩한 칼자국에 말라붙은 피가 얼룩덜룩하게 배여 보기만 해도 인상이 찌푸려질 지경이었다. 빨래라도 해보려 옷을 붙들고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홍빈의 옷은 걸레조각만도 못하게 상해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뒷목이 쭈뼛 서는 일을 당했던 것이 마냥 꿈인 듯 느껴졌다. 풀벌레 소리와 작은 새소리만 간간히 들려오는 이곳이 너무도 평화로워 마치 깊은 악몽을 꾸고 일어난 듯 모든 것이 기이하기만 하다. 주지스님이 마지막으로 구해주셨던 옷이었다. 


손에 지닐 수 있는 마지막 유품과도 같았던 옷이 버리지 않고서는 안될 만큼 상해버렸으니 안타까운 마음에 한참이나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리던 홍빈의 얼굴이 돌연 새하얗게 질렸다. 


이럴 수가……. 숨이 가쁘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눈앞이 새까매지는 기분에 홍빈은 몇 번이고 크게 심호흡을 해야 했다. 넝마가 된 옷을 몇 번이고 샅샅이 더듬어 보았으나 어디에도 찾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마룻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홍빈의 손이 벌벌 떨렸다. 





'퍝ㅌ > 장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랍콩] 구미호 반려전 4  (0) 2015.11.30
[랍콩] 구미호 반려전 3  (0) 2015.11.30
[랍콩] 구미호 반려전 1  (0) 2015.11.30
[연홍] 소소한연애담  (0) 2015.11.23
[랍혁] 소소한연애담  (0) 2015.11.2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