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취향의 존중

[랍혁] 소소한연애담 본문

퍝ㅌ/장편

[랍혁] 소소한연애담

밤비v 2015. 11. 23. 00:08

 와사비 WASABI 







"형! 나 배고파."


밥 맡겨놨나 이자식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밥을 찾는 상혁의 목소리에 원식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수족관에서 뜰채로 펄떡펄떡 날뛰는 자연산 광어 한 마리를 잡아 도마 위에 올린 원식이 미간을 팍팍 찡그리며 사시미 칼을 옆으로 눕혀 광어 대가리를 신나게 두드렸다. 순조롭게 기절한 광어의 꼬리와 지느러미에 칼집을 내자 카운터위에 책가방을 던져놓은 상혁이 고양이처럼 원식의 주변을 살금살금 얼쩡거렸다.


“나 주려고?”

“참나, 주방 가서 인사하고와.”


저 왔어요오! 주방에서 홀로 음식이 나오는 카운터에 머리를 쑥 들이민 상혁이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하자 주방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여럿 터져 나왔다. 예리한 칼끝의 감각을 이용해 광어의 뼈와 살을 분리하던 원식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형 맛있는 거 해줘.”

“나 지금 칼 들고 있는 거 안보이냐.”

“아줌마! 형이 나 협박해!”

“아오, 저게.”


뼈에 살점하나 없이 깔끔하게 광어 살을 발라낸 원식이 머릿속으로 퇴근시간을 천천히 계산하며 반으로 쪼개진 광어를 4등분으로 갈랐다. 껍질과 생선살 사이에 칼날을 집어넣고 껍질을 잡아 뜯던 원식은 넉살좋게 주방에서 알 밥을 주문시키는 발랑 까진 유치원 선생의 샛노란 뒤통수를 노려봤다.


얇게 썰린 무채위에 얇게 뜬 광어회를 칼에 얹어 정갈하게 옮기던 원식은 수저를 입에 물고 멀뚱멀뚱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상혁을 모른 척 지나쳤다. 원식이 직원에게 완성된 회 접시를 넘겨주자 뜨거운 돌솥을 수저로 휘젓던 상혁이 아쉬운 소리를 한다. 어! 나 주는 줄 알았는데. 


상혁은 둥그런 수저를 입에 물고 차분하게 조리대 위를 정리하는 원식의 옆모습을 훔쳐봤다. 어쩜 저리 눈길 한 번 안주는지. 까만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는 원식을 홀린 듯 바라보던 상혁이 입을 삐죽 놀리며 부지런히 수저를 놀렸다. 저런 모습도 멋있어 보이는걸 보니 콩깍지 뒤집어쓴 내가 잘못했네. 잘못했어. 먼저 좋아하면 지는 거라고 했다. 아쉽긴 하지만 별수 있나. 상혁은 자신이 있었다. 수저를 고쳐 쥔 상혁이 돌솥 바닥을 박박 긁자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은 원식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밥 더 줘? 왜 빈 그릇을 긁고 난리야.”

“누룽지가 제일 맛있거든요.”


돌솥에 구멍 나겠다. 돌솥과 철 수저가 긁히는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감자탕 먹으러 가려고 했더니. 원식은 머리위에 뒤집어쓰고 있던 두건을 잡아 벗었다. 잔뜩 눌려서 납작해진 머리카락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탈탈 털자 수저질을 하던 상혁이 질색하는 얼굴을 했다. 


“아 형. 아무리 그래도 밥 먹는데.”

“아침에 머리 감았거든?”


상혁의 면박에 뻘쭘한 표정을 지은 원식이 상혁 쪽으로 물 컵을 내밀었다. 실실 눈웃음을 흘리는 상혁이 물 컵을 받아들고 쭈욱 들이키자 의자에 기대 반쯤 누워있던 원식이 늘씬한 몸을 바로 일으켜 앉았다. 옷 갈아입고 온다. 툭 내뱉은 원식이 빈 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을 홀짝이며 고개를 끄덕인 상혁은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앞치마를 벗는 원식의 뒷모습을 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저 기럭지, 몸매 하나는 진짜 죽여줘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에 대해. 날것 냄새를 풍기며 어두운 뒷골목을 전전하는 그들만의 뜨겁고 끈끈한 우정에 관한 동경은 상혁에겐 범접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로 느껴졌다. 뉴스보다는 만화책이 더 가까웠던 시절이 있었다. 원식을 기다리며 미지근하게 식은 녹차를 들이키던 상혁은 5년 전 이맘때를 떠올렸다. 귀가 찢어지게 추운 겨울이었다. 수능 만점자가 서른 명이 넘게 나왔다. 물수능이 아니었냐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원하게 시험을 망친 상혁은 자신과 같은 수능 실패자들과 일등만 기억하는 빌어먹을 세상을 외치며 내일은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술을 퍼마셨다. 


난 집에 가면 엄마한테 죽었다. 술에 취해 정신없는 비틀비틀 걷는 와중에도 상혁은 집에서 잔뜩 벼르고 있을 김여사를 떠올리며 속으로 벌벌 떨었다. 들어가지 말까……. 그래 집에 가지 말자. 용감하게 재워줄 친구목록을 뒤지던 상혁은 싸늘하게 뒷목을 스치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외박하면 분명 호적에서 파일지도 몰라. 핸드폰 진동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아. 어머니……. 언제나 엄격하게 자식교육에 힘쓰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상혁은 울상을 지었다.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하나. 킁, 찬바람에 코끝이 시렸다. 춥다, 집에 가야지.  골목길 어귀를 서성이던 상혁은 핸드폰을 쥔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체 걸었다. 아니 걸으려고 했다. 상혁이 지나가던 골목길에 드러누워 있던 원식을 발견하기 전까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무섭지도 그렇다고 특별하지도 않은 모습이어서 상혁은 사실 조금 실망을 했었다. 에이, 조폭 별거 아니네. 전치 48주라고 했다. 상혁은 머릿속으로 48주를 4로 나누면 몇 달이나 되는지 계산하면서 새삼 원식이 지금 죽다 살아났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떻게 두드려 맞았는지 갈비뼈는 네 대나 부러지고 왼다리랑 오른팔은 뼈에 금이 갔다. 거의 부러진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나마 뼈가 어긋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혀를 내두르던 의사선생님에게 꾸벅 인사를 하던 원식의 얼굴은 멍이 들어 꼴사납게 부어있었다. 


“은인이에요.”

“?”

“내가 아저씨 생명의 은인이라고요.”


생크림 케이크를 사들고 찾아온 상혁이 원식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많이 바빴어요?”

“똑같지 뭐.”

“다행이네, 난 오늘도 장난 아니었는데.”


커다란 뼈다귀 감자탕 냄비를 가운데 두고 마주앉은 상혁이 물수건으로 손을 벅벅 문지르며 말했다. 그러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혼자 세상 다 산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상혁을 보던 원식이 피식 웃으면서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 상혁에게 건넸다. 요즘 어린애들이 얼마나 영악한지 몰라요. 상혁은 하루 종일 유치원생들에게 시달렸던 일을 털어놓으며 열심히 젓가락을 놀렸다. 귀여운 건 알아가지고 사고는 있는 대로 쳐놓고 혼내려고 하면 애교부리면서 도망간다니까요? 원식은 젓가락으로 나물반찬을 한 움큼 집어 먹으며 열변을 토하는 상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반찬 맛있는 집이 진짜 맛집이라더니, 이 집 반찬 맛있네. 원식은 시뻘건 김치조각을 입에 넣고 씹으며 말했다. 


“뭐, 똑같네.”

“칭얼대기는 또 얼마나……. 음?”

“너랑 똑같다고.”


너도 사고치고 수습 안 되면 애교부리잖아. 팔팔 끓어오르는 감자전골의 불을 낮춘 원식이 작은 그릇에 큼지막한 돼지등뼈를 퍼 담아 상혁의 앞자리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 몇 일전에 술 마시고 우리 집에 와서 행패 부린 날 기억 안나냐? 원식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 컵에 물을 따랐다. 사고치고 나서 애교 피우는 건 너 따라올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 한두 번이어야 말이지. 원식은 그때 일이 생각나는 듯 자기 몫의 등뼈를 그릇에 담으며 피식피식 웃었다. 아무렴요 죄인은 말이 없습지요. 상혁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된 표정으로 입을 삐죽이며 젓가락을 손에 쥐고 눈앞에 놓인 돼지등뼈에 붙은 살을 마구 헤집었다. 술 먹고 민폐 끼친 전과가 한두 번이 아니라 따지지도 못하겠다. 이게 다 술 먹고 집에 들어가면 김 여사한테 등짝 스매싱 당할까봐 무서워서 그렇다. 상혁은 수저로 국물을 떠 밥에 비벼 먹으면서 생각했다. 내년부터 진짜 금주해야지. 



날이 제법 추웠다. 야상에 목도리를 둘둘 만 상혁은 코끝이 찡해지는 추위에 어깨를 움츠렸다. 원식과 뼈다귀감자전골 2인분을 말끔하게 해치운 상혁은 입가심용 박하사탕까지 입에 물고 어둑한 골목길을 걸었다. 한참을 말없이 거리를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던 상혁이 불쑥 원식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사탕 먹을래요?”

“너 먹어.”

“맛있는데.”


주머니를 뒤적이며 담배를 찾던 원식이 라이터를 꺼내들며 피식 웃었다. 야상을 입고 있어서 그런가 하는 짓도 그렇고 영락없는 강아지였다. 키 180이 넘는 덩치만 큰 바보 멍멍이. 아 춥다. 새하얀 입김을 후후 불면서 고개를 뒤로 젖히자 새카만 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도 별이 보이는구나. 오오 신기해. 희미하지만 빛을 발하는 별들이 저 멀리 떠 있었다.


"어어-"


좀 더 오랫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면 더 많이 보일 것 같은데. 목이 꺾어지도록 하늘을 보고 있던 상혁의 몸이 뒤로 슬슬 넘어가기 시작했다. 어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있던 상혁이 중심을 못 잡고 휘청대가 원식이 그의 팔을 세게 잡아당겼다. 


“조심 안하지?"

“흐흐, 땡큐.”


뒤통수에 구멍 낼 일 있냐. 어이없는 표정으로 원식이 상혁의 코끝을 튕기며 잔소리를 하자 새빨개진 코를 찡그린 상혁이 헤실헤실 웃었다. 웃음이 나와?! 혀를 쯧쯧 차던 원식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입에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저 깨끗한 멘탈을 어찌하면 좋을꼬. 한숨을 푹 내뱉자 담배연기가 뿌연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어느 샌가 또 원식의 옆에 딱 붙어 걷던 상혁이 겨울바람에 차게 식은 손가락을 은근슬쩍 감아왔다. 꼭 이렇다. 먼저 잡은 주제에 슬금슬금 원식의 눈치를 보는 상혁이 못내 귀여워 원식은 모르는 척 묵묵히 담배를 태웠다. 


“담배 몸에 안 좋아요.”


걷는 내내 손을 꼬물꼬물 움직여 원식과 깍지를 낀 상혁이 투덜댔다. 담배 많이 피면 치아색도 변하는 거 알아요? 기침도 나고 몸에도 나쁘고…… 누가 유치원 선생님 아니랄까봐. 박하사탕을 입안에 굴리며 흡연의 나쁜 점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하려드는 상혁의 목소리를 말없이 듣던 원식이 담배꽁초를 바닥에 튕겨 껐다. 


“한상혁.”

“그리고 간접흡연이 얼마나...음?”


원식이 깍지 낀 손에 힘을 주며 멈추어 섰다. 내가 잔소리가 너무 심했나? 직업병의 폐해가 이런 것이구나. 상혁은 조금 민망한 얼굴이 되어 원식의 눈치를 살폈다. 원식이 입을 꾹 다물고 무표정한 얼굴로 있으면 사실 좀 무서운 상혁이었다. 포스가 좀 남달라야지. 이럴 땐 우선 빌고 봐야한다. 아니 형 내말은... 상혁이 우물쭈물 입을 열자 원식이 피식 웃으며 입술을 들이밀었다. 숨결 사이로 씁쓸한 담배 냄새가 났다. 깜짝 놀라 눈을 부릅뜬 상혁의 표정을 살피던 원식이 슬쩍 입술을 떼고는 피식 웃었다. 이 바보가. 


“눈 감아, 이 꼬맹아.”


커다란 손이 상혁의 눈을 덮었다.













fin.


저는 랍혁을 참 좋아라합니다 랍혁 후후후후후 *-_-*

츤츤한 김원식과 패기넘치는 미자 ㅋ 



'퍝ㅌ > 장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랍콩] 구미호 반려전 3  (0) 2015.11.30
[랍콩] 구미호 반려전 2  (0) 2015.11.30
[랍콩] 구미호 반려전 1  (0) 2015.11.30
[연홍] 소소한연애담  (0) 2015.11.23
[켄택] 소소한연애담  (0) 2015.11.2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