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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존중

[연홍] 소소한연애담 본문

퍝ㅌ/장편

[연홍] 소소한연애담

밤비v 2015. 11. 23. 00:43

 물이 흐르는 시간 







“안 팔아.”

 “왜요?”

 “내 마음이지.”



홍빈은 울상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근데 전화 온 사람이 연예인이래요. 그 왜 막장 수목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 아줌마 있잖아요. 홍빈은 전화기를 손바닥으로 틀어막으며 중얼거렸다. 


“아줌마고 아저씨고, 안 판다는데 왜 자꾸 난리야.”

 “그래도...”

 “시끄럽고. 벨라 밥이나 주고와.”

 “싫어...”

 “쓰읍, 까분다.”




학연이 팍 인상을 쓰자 금세 쭈굴쭈굴해진 홍빈이 전화기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이 까라면 까야지. 알바생은 힘이 없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마가 꼈었던 게 틀림없다. 왜 멀쩡한 일자리를 놔두고 여길 왔을까. 목장갑에 비닐장갑까지 꼼꼼하게 장착한 홍빈의 표정이 일분일초마다 짜게 식어간다. 


그냥 평범한 물고기 밥은 먹을 수 없는 거니 얘들아...? 냉동실 문을 연 홍빈의 얼굴이 핼쓱하게 질렸다. 냉동실 한쪽 구석에 흰쥐와 개구리가 차곡차곡 정돈되어 있었다. 취향한번 괴팍하다. 냉동실 안에서 저런걸 보게 될 줄이야. 눈물을 머금고 냉동실에서 꽁꽁 얼린 개구리 한 마리를 꺼낸 홍빈이 울상을 지었다. 으아아아아 징그러워! 온몸을 부르르 떨며 소리 없는 괴성을 질러대던 홍빈은 벌벌 떨며 자신의 키보다 조금 더 높은 어항 안으로 꽁꽁 얼린 개구리 한 마리를 던져 넣었다. 꼬르륵. 개구리가 물속으로 잠기기 무섭게 물고기 떼들이 개구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건 진짜 눈뜨고 못 보겠어... 홍빈은 잘못한건 없지만 속으로 매번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울먹이며 눈물을 훔쳤다. 사장님 나빠요. 홍빈은 마음속으로 오늘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 사라진 개구리를 조용히 애도했다. 아아, 그는 좋은 개구리였습니다. 


세상은 넓고 취향은 다양하다. 홍빈은 변하지 않는 그 심오한 진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야했다. 피라냐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사람의 취향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상혁에게 말했다면 취향존중을 외치며 인간의 다양성에 대해 열심히 가르쳤겠지, 미래의 꿈나무들을 위해서.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미래의 안녕까지. 그랬다. 처음 홍빈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이거 그거 아냐? 영화로도 나왔잖아...피라냐 3D. 벨라를 볼 때마다 홍빈은 몇 년 전 여름에 개봉했었던 삼류 영화를 떠올리며 공포에 떨었다. 홍빈도 그 영화를 본적이 있다. 징그럽기만 징그럽고 재미도 없었는데. 두 눈을 꼭 감은 채 피라냐에게 먹이를 던져준 홍빈이 부리나케 도망쳤다.


“이홍빈 돈 벌기 싫으냐.”



개구리를 어찌나 세게 던져 넣었던지 넘실거리던 물이 바닥까지 튀자 학연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아니요 사장님.. 홍빈은 눈물을 머금고 창고에서 밀대를 꺼내 바닥을 닦았다. 피라냐 떼들은 여전히 수조안을 살벌하게 헤엄치며 개구리 뒷다리로 포식을 하고 있었다. 야, 물기 닦는 김에 바닥이나 한 번 더 닦아라. 아침에 닦았는데.. 쓰읍. 요즘 말꼬리가 길다 너? 



그렇다. 보스가 까라고 하면 까야하는 거다. 홍빈이 물걸레를 짜기 위해 상점 밖을 나서자 유리창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여고생들이 꺄악 하는 비명을 지르더니 멀리 도망간다. 본의 아니게 구경하던 여고생들을 쫒아버린 홍빈이 멋쩍게 웃었다. 그냥 들어와서 구경하면 될 텐데, 밖에 덥잖아. 들어와서 에어컨바람도 쐬고 물고기도 구경하고 또 매상도 올려주면 얼마나 좋아. 수족관 구경을 온 여고생들에게 생글생글 웃어주는 학연을 상상하던 홍빈은 왠지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쩜 이렇게 안 어울릴까.. 특유의 아니꼬운 표정으로 여고생들을 내려다보는 학연이 뭔가 좀 더 자연스럽다. 사장님, 사장님 이미지가 이래요.



“이씨, 똥고양이! 절루가.”

“에드워드 이리와.”



가게 안으로 들어온 홍빈이 열심히 바닥을 빡빡 닦자 어디선가 학연의 까만 고양이가 나타나 어슬렁거리며 젖은 바닥에 발자국을 쿡쿡 찍고 다닌다. 홍빈을 졸졸 따라다니던 에드워드는 홍빈의 발꿈치 근처를 살랑거리다 학연의 부름에 뽀르르 달려갔다. 그걸 본 홍빈은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이 잔망스러운 똥고양이. 온갖 장난은 다 홍빈에게 치면서 꼭 애교는 학연에게 가서 부린다. 넌 나한테 그러면 안 돼. 너 밥도 내가 주는데. 어디선가 고양이 장난감을 찾아 에드워드에게 던져준 학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간다.



“어디가세요?”

“담배.”



바닥을 닦던 홍빈이 창너머로 유리벽에 비스듬히 기댄 체 담배에 불을 붙이는 학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담배 좀 끊지... 장난감을 가지고 뒹굴 거리던 에드워드가 학연이 사라지자 다시금 홍빈의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이홍빈. 너 같이 일도 못하는 애를 왜 데리고 있는 줄 알아?”



홍빈은 하루도 빠짐없이 손바닥자국이 찍히는 가게 전신유리를 신문지로 호호 불어가며 닦아내고 있던 중이었다. 유난히 하늘이 맑아 해가 쨍하게 내려쬐던 날이다. 날이 맑으니까 좋긴한데 손바닥자국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중간 중간 입술자국도 있다. 하여튼 여고생들이 여간 잔망스럽지 않아. 홍빈이 혀를 쯧쯧 찼다. 눈을 가늘게 뜬 체 유리창에 찍힌 손자국을 확인한 홍빈이 유리세정제를 칙칙 뿌렸다. 홍빈은 유리창 닦는걸 좋아했다. 그런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학연의 수족관에서 일을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자국 하나 없이 반들반들해진 유리창을 보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희열까지 느낀다. 물론 매일 닦아야 하는 건 귀찮지만. 


난 사실 가정적인 남자였어. 홍빈은 자신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한 것에 좀 더 의의를 두기로 했다. 땀이 송글송글 맺히도록 유리창을 신문지로 문대던 홍빈 옆에서 세상에서 제일 껄렁한 자세로 담배를 피우던 학연이 대뜸 그런다. 



뜬금없는 학연의 질문에 홍빈이 손에 쥐고 있던 꼬깃꼬깃한 신문지보다 더 구겨진 얼굴을 했다. 지금 내가 영혼을 불사르며 유리창 닦기에 매진하는 게 안보이나? 일을 못한다니! 손이 빠르진 않아도 꼼꼼하다고 칭찬받던 일꾼인데! 홍빈이 당장 신문지조각을 학연의 얼굴에 던져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짓자 학연이 피식 웃으며 담배를 들지 않은 손으로 홍빈의 미간을 꾹꾹 눌러준다. 못생겨 보여 인상 쓰지 마.



“일도 못하는데 왜 데리고 있는건데요?”

“예뻐서.”

“뭐요?”

“예뻐서. 난 내 주변에 예쁜 게 많은 게 좋아.”



마저 닦고 들어와라. 학연은 필터 끝까지 타들어간 담배꽁초를 튕겨 도로위에 던지고는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망부석처럼 굳어버린 홍빈을 뒤로한 체. 지금 생각해 보면 핵폭탄급 발언이었는데. 홍빈은 심란한 기분이 들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남자에게 예쁘다고 하는 게 정상인가. 아니면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뛰었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한참이나 끙끙대며 고민하던 홍빈은 생각했다. 학연이 예쁘다고 명명하는 몇 가지의 것들에 대해서. 









벌써 수십 번째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아니요. 여기 물고기 파는 곳인데요. 수조는 안 팔아요. 물고기만 판다니까요? 수조가 필요하시면 다른 곳에서 주문하시면 되잖아요. 아니, 안 판다니까요! 어디서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알고 전화를 하는지 자꾸만 수조를 팔라고 전화가 온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수조 안에 들어있는 수초조경을 말하는 거겠지만. 1년이 넘게 공을 들여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처음 수초를 심는 것보다 기르고 관리하는 일이 더 손이 많이 간다는 걸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다. 안 그러면 쉽게 팔라는 소리가 안 나올 텐데.



학연은 연달아 울리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돌려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커다란 수조 모서리에 까만 고양이가 대롱대롱 매달려서 물속을 향해 발톱을 휘두르고 있었다. 냉큼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아 번쩍 들자 움찔 하더니 슬금슬금 학연의 눈치를 본다. 귀여운 척 해도 소용없다 벌써 전과범이야 너. 학연은 잠시 에드워드가 벨라에게 시비를 걸었던 횟수를 세어보다 포기했다. 그냥 흉악범 수준이었다. 학습능력이 없는 건지 지치지도 않나. 물고기한테 물리면 약도 없어요. 학연은 가볍게 고양이의 콧등을 튕겨준 뒤 바닥에 내려놓았다. 내려놓자마자 가게 한 구석으로 쪼르르 달려가는 폼이 심상치 않다. 멀찍이 사라지는 에드워드의 뒤에 대고 중얼거린 학연이 뒷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를 빼어 물고 가게 밖을 나섰다. 담배도 다 떨어져가네. 역시 한 번에 두 갑씩 사야겠어. 

 

가게 앞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학연이 고개를 들었다. 남자가 가게 앞에 멍하게 서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한 번씩 의아한 시선을 던진다. 학연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민족 특유의 근성을 느끼고는 쓰게 웃었다. 매끈한 조약돌위에 비죽 튀어나온 모서리를 참을 수 없어 하듯, 다름을 수용하지 못하는 고지식함. 길 한복판에서 가만히 서 있으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멍하게 서 있는 저 남자를 불쾌해하거나 혹은 신기해한다. 웅성대는 목소리와 낮은 비웃음을 흘려들은 학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남의 가게 앞에서 쪽팔리게. 학연은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넋을 잃고 수조가 설치되어있는 전면유리창을 멍하게 응시하는 한 남자를 위아래로 훑었다. 뿔테 안경에 청남방, 백팩까지 매고 있는 꼴이 영락없는 학생이다. 고등학생, 아니 대학생? 유심히 남자를 스캔하던 학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저건.  


“관심 있어요?”

“아..신기해서요.”



숲속에서 물고기들이 날아다니는 것 같아요. 학연은 남자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존재할 수 없는 무릉도원을 창조해낸다. 학연 나름의 궁극적인 목표였고 또 구현해보고 싶은 이상理想이었다. 학연은 갑자기 이 남자에게 묘한 호감이 생겼다. 특별한 자부심이 있는것은 아니지었만 자신이 만든 작품을 순수하게 감상하는 남자에게 호기심이 든다. 


“이거 내가 만든 건데.”

“와아...”



홍빈이 별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뚫어지게 수조를 들어다 보고 있던 사람치고는 반응이 시원찮아서 학연은 조금 뻘쭘해졌다. 그럼 수족관 주인이신가봐요. 그제야 수조에서 눈을 뗀 홍빈이 학연을 마주본다. 


“일 잘해요?”

“네?”

“우리 알바생 구하는데.”

“정말요?”



학연은 대답대신 담배를 입에 물고 등 뒤의 유리문을 툭 쳤다. [파트타임 직원 구함. 010- 89*-****] 반으로 잘린 A4 용지 한 귀퉁이에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적혀있는 종이가 유리문 위에 붙어있었다. 글씨 엄청 귀엽게 쓰네. 무의식적으로 수족관 사장의 글씨체를 품평하던 홍빈이 학연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할게요.


“내일 이력서 가지고 오세요.”

“네.”

“고양이 알러지 없죠?”

“네? 없어요.”

“잘됐네.”



끝까지 타들어간 담배꽁초를 도로위로 훌쩍 튕기던 학연이 싱긋 웃었다.  











*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에피소드 마다 제목이 달라요 'ㅅ'

물이 흐르는 시간은 학연이 일하는 수족관의 이름입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순서는 딱히 없습니다만 가장 먼저 쓴 글이 연홍, 그다음이 켄택, 마지막으로 랍혁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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