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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엔] 구미호 반려전 외전 본문

퍝ㅌ/장편

[택엔] 구미호 반려전 외전

밤비v 2015. 11. 30. 21:46



 

주머니는 두둑하고 양 손은 한 없이 가볍다. 나날이 유명해지는 학연의 솜씨는 입소문을 타고 퍼졌다. 떡을 사기위해 아랫마을에서 왔다는 넉살좋은 아낙의 수다스러운 칭찬에 학연은 새침하게 웃었다. 내가 또 한 손맛 하지. 인심 좋게 꿀에 절인 깨가 듬뿍 들어간 송편을 두어 개 더 얹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껴야 산다는 옛 선조의 깊고도 심오한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사는 학연이 주머니를 여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것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던 아우인 상혁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그런 그가 상혁이 사달라 조르는 비빔밥에 도토리묵까지 덤으로 주문해 대접할 정도로 요즘 학연은 엽전 긁어모으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철쭉아. 너도 짐이 적으니 좋지?”

 


분홍 꽃이 피는 봄에 태어나 꽃 이름을 붙여주었다. 저가 지은 이름이지만 확실히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눈망울이 이리도 어여쁜걸. 학연은 기분 좋게 손에 쥔 고삐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윤기 흐르는 적갈색 털을 가진 어린 소였다. 커다랗고 검은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걸을 때마다 갈색 귀가 이리저리 쫑긋거렸다.    


 

등 뒤로 어스름한 노을이 내렸다. 저무는 해는 산 고개를 오르는 학연의 발아래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집으로 가기위해 지나는 언덕위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하루의 피곤을 잊게 해줄 만큼 포근한 모습이었다. 학연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부지런히 다리를 옮겼다. 



집에 가서 다듬어야할 재료를 머릿속으로 하나씩 생각하며 걷던 학연의 몸이 돌연 뒤로 쑥 밀렸다. 굳은 듯 자리에 서서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던 철쭉이 울음소리를 내며 뒷발길질을 하고있었다.



“워워. 철쭉아.”

 

 

고삐를 양손으로 꼭 붙잡은 학연이 불안한 표정으로 철쭉의 상태를 살폈다. 갑자기 왜 이러지?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불안한 듯 끔벅이는 철쭉은 울음소리를 내며 버틸 뿐 좀처럼 앞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슬슬 해가 지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학연이 발을 동동 굴렀다. 결국 자리에 서서 꼼짝 앉는 철쭉을 나무그루에 매어놓은 뒤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꺅!!”



멀지 않은 곳에서 수풀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한 학연은 급하게 양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콩알만 하게 쪼그라든 심장을 애써 진정시킨 학연은 재빨리 남자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혹시 죽었나? 학연은 남자의 주변을 살피며 발을 동동 굴렀다. 뻣뻣하게 굳은 발을 겨우겨우 움직여 남자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던 학연은 식은땀이 흐르는 두 손을 꼭 쥐었다. 


옴마야 나 무서워...


피. 

남자의 입가에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학연의 얼굴이 납덩이처럼 까맣게 질렸다. 어떡해 진짜 죽었나봐... 멀지 않은 곳에서 철쭉이 구슬픈 소리로 울었다. 꼭 잡은 두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카랑카랑하게 울리는 비명소리에 수풀에 누워있던 택운이 몸을 흠칫 떨었다. 시끄러워. 인간에게 발견된 모양이었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가. 통증이 밀려왔지만 자리를 피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택운이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자 목안에 고여 있던 피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기침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 비명이 터졌다.    



“컥. 크윽.”


“꺄아악!”

흠. 시끄러운데 그냥 잡아먹을까. 근처로 다가온 낯선 인간을 바짝 경계하면서도 택운은 숨쉬기 무섭게 터지는 기침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였다. 깜짝 놀란 학연이 재빨리 택운의 곁으로 다가섰다. 학연은 긴장으로 잔뜩 마른 입술을 축였다. 


 

“괜, 괜찮소?”


“컥...”

 

 

귀찮다는 얼굴로 몇 번인가 학연의 손을 뿌리치려 몸을 움찔대던 택운이 다시 한 번 울컥 피를 쏟아내자 학연의 낯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숨 넘어갈듯 헐떡이는 남자의 숨소리가 이상했다. 독을 먹었나? 낮게 그릉대는 소리가 심상치가 않다. 이건 꼭... 잠시 고민하던 학연은 남자의 등을 퍽퍽 두드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뭘 먹은 거야. 학연은 걸쭉한 사투리가 섞인 방언으로 연신 택운에게 떠들며 그의 등을 퍽퍽 두드렸다. 컥컥대며 기침을 하는 꼴이 뭐랄까. 우리 집 흑구가 어디선가 주워 먹은 닭 뼈가 목에 걸려 컥컥대는 기침소리랑 똑같다. 


 

등을 후려칠 때마다 머리가 뎅뎅 울렸다. 거기다가 가슴 언저리에 걸려있던 무언가가 식도를 타고 넘어오려 하고있었다. 녹아 없어질 때까지 소화시킬 계획이었는데. 어쨌든 먹을 수 있는 거였다. 물론 효과가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천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덕유산을 지키던 산신山神이 그 자리를 어린 백호에게 물려준 것이 올 햇수로 스무해가 되었다. 덕유산을 둘러 자리잡은 계룡산을 시작으로 가야산, 내장산 지리산의 산신은 백년도 지나지 않은 솜털 뽀송뽀송한 덕유산 백호를 그야말로 손안의 구슬처럼 여겼다. 이렇듯 백두대간의 산신이 어린 백호를 어여뻐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허나 이번 덕유산신은 유난히 숫기가 없어 낯을 가렸다. 택운은 주변의 관심이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백호는 산세가 험한 계곡 깊은 곳에 터를 잡고 그곳에서 은둔하여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런 백호가 터를 벗어나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다. 바로 산에 부정한 것들이 스며들었을 때였다. 날카롭게 울어대는 들짐승 소리에 좀처럼 밖으로 나오는 일이 없던 백호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예로부터 백호의 일족은 땅을 다스리며 전투에 능해 세상을 어지럽히는 부정한 귀신과 요물을 없애는 일을 해왔다. 사방四方신 중에서도 백호는 특유의 호기로운 성격으로 유명했으나 택운은 달랐다. 그냥 귀찮은 일은 질색이었다. 



오래된 고목나무에 붙어 기생하려던 악귀를 발견한 택운은 귀찮은 표정으로 혀를 찼다. 시커먼 음기를 머금은 이것은 인간들의 탐욕을 먹고 생겨난 요괴였다. 인간 사이에 터를 잡고 살던 짐승은 종종 인간이 흘리는 탐욕스러운 음기에 씌어 요괴로 둔갑한다. 워낙 산세가 깊고 교류가 적어 수도에 비한다면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부정함이 말로 할 수 없어 택운은 인상을 찌푸렸다. 



저건 어떻게 없애더라. 택운은 잠시 고민했다. 불태워 죽이는 것이 가장 편하겠지만 짐승의 화를 달래지 않으면 업業이 생긴다. 그러면 덕을 더욱 많이 쌓아야하고 그러려면 나설 일이 더 많아지고... 여튼 진짜 싫다. 


 

무無로 되돌리자. 택운은 공중에 손을 뻗어 허공에 휘휘 휘저었다. 손톱 끝으로 갈라진 공간이 생겨났다. 손을 뻗어 집어넣자 은색의 투박한 창이 택운의 손에 감겼다. 장식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밋밋한 모양새였다. 택운은 축축 늘어지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생각했다. 귀찮으니 그냥 잡아먹어야겠다.  


 

 


 


“토한다고 생각하고 뱉어요!”


 

아니 그럼 안 되는데. 그러나 한번 역류하기 시작한 그것은 결국 택운의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기침 때문에 내장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인간 진짜 싫다. 어떻게 잡은 건데. 택운은 흐려지는 의식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이려 꿈틀대는 검은색 덩어리 노려봤다. 택운은 뒷골이 댕댕 울리도록 소리를 질러대는 학연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너. 시끄러워.”


 

일이고 뭐고 내일은 그냥 쉬는 거다. 이틀에 한번 장에 나가는 일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던 학연은 땀이 뚝뚝 떨어지는 턱을 소매로 훔치며 마루에 발라당 드러누웠다. 옷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핏덩이를 토해낸 남자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철쭉위에 기절한 남자를 부축해 소 등에 얹은 학연은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않는 철쭉을 어르고 달래 집까지 걸어야 했다. 너까지 왜 그래. 나 힘들어. 흑흑. 콧등으로 학연의 옆구리를 밀 때마다 가벼운 학연의 이리저리 몸이 휘청였다. 그렇게 소를 끄는 건지 미는 건지 알 수 없는 모양새로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무거워 죽는 줄 알았네. 학연은 외양간에 들어앉아 느긋하게 볏짚을 우물대는 철쭉을 한번 노려본 뒤 굳게 닫힌 안방 문을 뚫어질듯 노려보았다. 무거운 절굿공이를 매일 매일 휘두르는 학연을 쩔쩔매게 만든 체구의 남자가 학연의 방안에 누워있었다. 생김새며 풍채가 아무래도 범상치 않다. 사람인건 맞나 어쩜 저렇게 크담.

   

간단하게 끼니를 때운 학연이 심신의 안정에 좋다는 국화차를 우려 홀짝이기 시작했다. 산에서 나는 산국화를 말린 차였다. 지난 가을 상혁에게 비싼 값에 사들인 국화를 큰맘 먹고 꺼낸 학연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건초를 되새김질하는 철쭉을 흐뭇하게 살폈다. 푸르릉. 철쭉이 콧김을 내뿜으며 자리에 드러누웠다. 상팔자가 따로 없었다. 미지근하게 식어가는 차를 천천히 음미하는 학연의 등 뒤에서 기절했던 사내가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긴 팔다리를 휘적대며 방에서 걸어 나온 남자의 의복은 온통 흙투성이였다.두통이 오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남자를 흘긋대던 학연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찌뿌듯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 택운은 반나절도 안 되어 넝마조각이 되어버린 자신의 옷을 살피며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학연은 모르는 척 시선을 거두고 차를 홀짝였다. 


 

남자를 들쳐 매고 걷던 학연이 사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몇 번씩이나 바닥을 나뒹굴었던 탓이었다. 시선이 닿지 않는 남자의 등과 어깨의 상태는 더욱 심각했지만 학연은 보따리 대신 옷값을 물어내라고 할까봐 겁이나 입을 다물었다. 



“물.”



마시던 잔을 건넨 학연이 어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단숨에 차를 들이킨 남자가 입가에 묻은 물을 소매로 닦아내며 학연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이름이 뭐냐.”


“연안 차가家, 학연이요.”



얼결에 이름을 알려줘 버린 학연은 남자의 손에서 찻잔을 도로 뺏어갔다. 거렁뱅이 꼴을 하고 학연의 집 마루에 걸터앉은 남자는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사람이 맞나.



“그쪽은 이름이 뭐요?”



그제야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필 수 있게 된 학연은 속으로 감탄했다. 고운 피부결은 물론이고 새하얀 얼굴이 아름다운 미남이었기 때문이었다. 학연은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뭐야 덩치도 큰데 피부까지 곱잖아. 너무 하얀 사람은 왠지 싫단 말이지.



"잡아와."


"뭐요?"


"다시 잡아오라고."






*




애써 잡아먹은 악귀를 도로 뱉어내게되서 짜증난 택운호랭이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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