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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엔] 안녕, 내 사람 본문

퍝ㅌ/단편

[택엔] 안녕, 내 사람

밤비v 2015. 11. 24. 23:56



꼭 두 사람만큼의 온기로 데워진 이불속에서 가만히 몸을 뒤척였다. 모처럼 편안하게 잠에서 깬 택운은 눈도 뜨지 않은 채 익숙한 동작으로 탁자 위를 더듬어 아직 울리지 않은 알람시계를 눌러 껐다. 가슴위에 묵직하게 얹힌 학연의 팔뚝을 가만히 어루만지자 잠결에도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인다. 이불 밖으로 드러난 맨 어깨 위로 어슴푸른 새벽빛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흘렀다. 게슴츠레 창밖을 살핀 택운은 피부에 닿는 서늘한 공기를 느끼며 덮고 있던 이불을 끌어올려 드러난 학연의 어깨를 감쌌다. 고요하고도 평온한 아침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택운은 이불 아래로 손을 뻗어 학연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손바닥에 감기는 매끈한 피부는 아직까지 밤새 나누었던 열기를 머금고 있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가만히 시간을 계산하던 택운의 입가에 짓궂은 웃음이 피어올랐다.     



첫 만남은 조부의 장례식장에서였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집안이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얼굴 몇 번 본적 없는 조부를 애도하기 위해 모인 그 자리에서 학연은 조각이 맞지 않는 퍼즐처럼 홀로 존재하고 있었다. 명이 다해 죽을 운명은 귀인도 바꾸지 못했다. 계약을 맺기도 전에 명을 다 한 그의 조부 대신 학연은 택운에게 넘겨졌다. 떠넘겨졌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가문의 어른들이 내린 결정이었다. 택운에게도 학연에게도 거부권은 없었다. 



그럼에도 만일 누군가가 자신에게 가문의 사람이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기뻤던 순간을 뽑으라고 하면 택운은 주저 없이 학연을 만났던 그 순간을 고를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연이 자신의 귀인으로 정해졌던 그 때를. 




“아, 아.”



날갯뼈 위에 붉은 잇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움츠러든 어깨 위로 젖은 입술이 내려앉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하루에 여덟 시간은 꼬박꼬박 자야 한다며 첫날부터 자신의 수면보장권을 주장하던 학연은 자신보다 아침잠이 많았다. 매일 아침 가장 편안한 표정으로 잠든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요즘의 일상은 제법 나쁘지 않았다. 잠에 취해 달뜬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표정도. 



눈도 떠지지 않으면서 자신의 입술을 피해 이리저리 고개를 뒤척이는 학연의 아랫입술을 세게 깨문 택운은 짧은 비명과 함께 벌어진 입술 사이로 자신의 혀를 들이밀었다. 언제나 말보다는 행동이 빠른 사람이었다. 그런 택운이 노골적인 자세로 몸을 부딪쳐 오면 아무리 말주변이 좋은 학연이라도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새벽 공기에 서늘하게 식은 택운의 손이 학연의 허리를 쓸어내자 어젯밤 몇 번이고 자신을 나락으로 이끌었던 그 감각이 척추를 타고 저릿하게 흘렀다. 학연의 허리에 팔을 감아낸 택운이 뭉근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한숨 쉬듯 내뱉던 신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열기 녹아든 흐느낌이 되어 방안을 흘렀다. 



기절하듯 잠에 빠져든 학연의 젖은 목덜미에 한참이나 키스를 퍼붓던 택운은 낭랑하게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에 비스듬히 기대었던 몸을 일으켰다. 방문을 열자 통통한 볼을 가진 새하얀 얼굴이 제법 매서운 눈초리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의 허리에도 닿지 않는 작은 키를 가진 아이의 눈매는 무섭도록 택운과 닮아있었다. 어린 나이에 비해 제법 자신의 혼현을 잘 갈무리 하는 아이의 눈동자는 샛노란 파충류의 그것과 같았다. 



“엄마는?”


“꿈나라에.”


“또 괴롭혔지!”



택운은 대답대신 혼현마저 쏙 빼닮은 자신의 아들을 어깨에 들쳐 멨다. 익숙한 행동인 듯 자연스럽게 안겨 투덜대던 아이는 욕실 앞에 자신을 내려놓자마자 안으로 쑥 사라져 버렸다. 등 뒤에서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택운은 말없이 몸을 돌려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 안에는 조각난 과일과 야채가 믹서기 안에 깔끔하게 담겨 있었다. 아침잠이 많은 학연이 전날 밤 미리 준비해 놓은 아침 식사대용 음료였다. 



“으, 맛없어.”


“매일 똑같은 재료 넣고 만드는데 뭐가 맛이 없어.”


“진짜야. 아빠가 만들면 맛이 없어.”



택운은 자신과 똑같은 포즈로 쉐이크를 마시는 조그만 악어새끼를 가만히 내려다 보다 헛웃음을 지었다. 악어는 자립심이 강한 족종이었다. 따듯한 피가 흐르는 종족이 가지는 애정은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학연을 대하는 아들내미의 태도가 심상치 않았다. 학연의 몸을 통하긴 했지만 악어는 보통 알에서 태어난다. 아마 자신의 아들은 학연을 부모라고 인식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언젠가 확실히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택운은 전투적으로 쉐이크를 들이키는 아들의 머리카락을 살살 쓸었다.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는 법이었다.



이십분도 지나지 않아 준비를 마친 두 부자가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훤칠한 키에 벌어진 어깨를 한 택운과 비슷한 디자인의 야상을 뒤집어 쓴 아들내미의 얼굴은 두툼한 겨울옷에 파묻혀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답지 않은 서늘한 눈빛을 빛내며 택운의 팔을 붙잡고 칭얼거린다. 



“아빠 때문에 학연엄마 얼굴 못보고 나와써.”


“갔다 와서 봐.”


“아냐. 오늘 할머니집 간단 말이야.”


“.. 힘내 아들.”



택운의 다리에 매달려 한참을 투덜거리던 아들을 짐짝처럼 들쳐 매고 주차장을 통과한 택운은 매끈하게 빠진 남청색 포르쉐에 아이를 태웠다. 앉자마자 스스로 벨트를 둘러매는 행동이 자연스러웠다. 자리에 앉아 CD플레이어 버튼을 누르자 스포츠카의 위엄에 어울리지 않는 어린이 인기 동요가 흘러나왔다. 최근 크리스마스 선물로 학연이 사줬던 어린이 동요 베스트 50곡이 담긴 CD였다. 운전석에 앉아 열한 번째 트랙 ‘아기 콩’의 가사를 신나게 흥얼거리는 아이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택운의 눈빛이 부드럽게 풀렸다. 



“잘 다녀와 아들.”


“응. 안녕히 가세요.”


“그래.”


“아빠. 뽀뽀!”



기본 성격은 택운을 닮았어도 대부분의 육아를 도맡았던 학연의 애교가 몸에 베인 듯 눈웃음을 짓는 모습에 말없이 택운은 아이들 안아 올렸다. 겉모습은 유치원을 막 입학했을 법한 몸이었지만 실제로 아이의 나이는 세 살밖에 되지 않았다. 보통 반류들과는 성장속도가 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 몇년간 아이의 몸은 더 이상 자라지 않을 것이었다. 택운의 종족은 특성상 계단식 성장을 했다. 택운은 운나쁘게 중학생 이후로 몇년동안 성장이 멈춰버려 험난한 학교 생활을 해야 했던 자신의 고등 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피식피식 웃었다. 


 

“야.”


“웩. 아빠 이상한맛나.”



택운은 축축해진 뺨을 문지르며 인상을 썼다. 왼쪽 뺨이 온통 침 범벅이었다. 택운의 뺨을 강아지처럼 핥던 아이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택운의 품을 벗어나 폴짝폴짝 뛰어 울타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멀찌감치 도망치면서도 흘끔흘끔 택운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영락없이 차학연이어서 택운은 저절로 올라가는 입 꼬리를 숨기기 위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차에 올라탄 택운은 주머니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어 잠들어 있을 학연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스피커에서 열한 번째 트랙 ‘아기 콩’이 반복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운이 유치원 보냈어. 일찍 들어갈게. 사랑해]







학연은 나른한 표정으로 잠에서 깨어 푸스스 웃음을 지었다. 방안에 떠다니는 작은 먼지 조각들이 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공중을 부유하고 있었다. 바삭하게 마른 이불이 몸을 타고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햇빛 아래 드러난 학연의 어깨위엔 택운이 집요하게 남기고 간 붉은 흔적들이 꽃처럼 피어올라 있었다. 습성인지 습관인지, 유난히 관계중 이를 세워 깨물어 대는 버릇 탓에 학연의 어깨 위에는 각인처럼 택운의 흔적이 옅어졌다 새겨지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택운이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던 다정한 미소가 입가에 피어올랐다. 뻐근한 허리 감각에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지만 학연은 저절로 올라가는 입 꼬리를 멈출 수 가 없었다. 반쯤 몸을 일으킨 학연은 가만히 눈을 감고 매끈한 상체 위로 쏟아지는 햇빛을 즐겼다. 



꿈을 꿨다. 영운이 태어난 지 3년만의 일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귀인으로써 학연의 능력은 사라졌다. 영운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은 둘 사이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반복적인 생활과 규칙적인 일상에 익숙해져가는 삶은 학연에게 안정감이라는 단단한 버팀목을 만들어 주었다. 아주 오랫동안 달콤한 꿈에 빠져있었다. 학연이 잠들어 있던 시간의 작고도 부산스러웠던 두 부자의 아침부터 유치원 앞에서 아이를 배웅하며 지었던 택운의 다정한 웃음까지. 마치 그 장소에 함께 서 있던 것처럼 선명했던 그 꿈은 거리를 가늠 할 수 없는 먼 미래의 모습까지 빠르고도 짧게 학연을 스쳤다. 어렴풋이 어른이 된 아이의 미래를 들여다 본 듯 한 기분에 학연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몸을 일으킨 학연은 습관처럼 탁자위의 핸드폰을 집어 새로 온 메시지를 읽어 내렸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거스를수록 흐려지는 잔상에 변한 모습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변함없이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택운의 모습이 좀처럼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마 오늘 이후로는 어떠한 꿈도 꾸지 않으리란 걸. 학연은 나른하게 퍼진 몸을 움직이며 택운이 돌아올 시간을 계산했다. 오늘은 좀 더 빨리 그가 보고 싶은 날이다. 







스피커폰을 통해 쨍-하고 울리는 목소리에는 택운을 향한 원망이 섞여있어 학연은 앙다문 입술 사이로 비져나오는 웃음을 참기위해 헛기침을 흘렸다. 그러자 또 금세 울상이 된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전화기를 통해 퍼진다. 전화 너머로 부드럽게 울리는 학연의 웃음소리에 기분이 풀린 듯 금세 하루 일과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게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아빠가 해주는 건 맛없어. 엄마가 해주면 맛있는데. 꿈속에서 비장한 모습으로 쉐이크를 들이키던 둘의 모습이 방금 본 것처럼 떠올라 학연은 핸드폰 마이크를 손으로 가린 체 큭큭대며 웃어야 했다. 



[엄마 얼굴 못 봐서 슬퍼.]


"내일 일찍 집에 와, 우이 운이."


[응 가서 아빠 혼내줄게.]


"큭큭 알았어. 파이팅."



학연의 등 뒤에서 새하얀 팔뚝이 불쑥 비져나온다. 자리에서 펄쩍 뛸 정도로 놀란 그가 떨어트린 핸드폰을 등 뒤에서 나타난 손이 날렵하게 낚아챘다. 이런 건 꿈에서 못 봤는데.. 학연은 멎을 뻔한 심장 위를 쓸어내리며 몸을 틀려 했지만 학연의 뒤로 다가온 그림자는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학연의 등 뒤로 택운이 몸을 바짝 붙여왔기 때문이었다. 



“파이팅은 무슨.”


[아빠?! 아빠야?]



강한 팔이 학연의 허리를 단단하게 감싸 안았다. 택운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집에 들어온것도 모를 정도로 대화에 푹 빠져있던 학연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이었다. 아이가 생긴 후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흔치 않았다. 일분 일초가 아까운 시간이었다. 



“할아버지 말 잘 듣고 있어?”


[내일 하루 종일 엄마랑 놀거야!]


“엄마는 아빠거야.”



택운의 품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게 된 학연이 두 부자의 신경전을 지켜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소유욕 강한 것이 중종 반류의 본성인 것은 어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이가 생기고 서로에게 익숙해진 일상 속에서도 강한 페로몬의 영향을 받는다. 앞으로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할 자신의 반려였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좀 더 즐겁게 만들어줄 여우의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학연의 적갈색 눈동자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자기야 근데 난 영운이가 더 좋아.”


“아들. 우선 끊어.”








*

운전을 하고 지나가다 제목과 같은 이름의 카페를 봤어요

카페 이름에서 영감을 받아 (...) 썼던 새해 특집 단편이었습니다 

겨울같은 포근한 분위기를 생각하다보니 육아물이 나왔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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