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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홍] 납치 본문

퍝ㅌ/단편

[켄홍] 납치

밤비v 2015. 11. 24. 23:46



납치


이재환x이홍빈






시팔. 무슨 교양과목이 이렇게 빡센 거야. 생각을 해도 짜증이 나는 듯 재환이 거칠게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진짜 거저먹는 학점이라며 이빨을 까던 여자 후배의 말을 믿은 게 잘못이었다. 


선배 진짜에요. 진짜 쉽데요. 2장짜리 레포트 두개, 기말시험 하나 보면 끝이라니까요? 컴엔지 하는 제 친구 박경 알죠. 박경 걔가 저번 학기에 그 과목 들었는데 에이쁠 받데요. 진짜 쉬운가봐요. 걔 레포트 완전 젬병인데. 



에이쁠은 개뿔. 재환은 첫 수업부터 홀로 안드로메다를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박경은 에이쁠을 받았다니 머리를 쥐어뜯으며 분노하던 재환은 개나 줄래도 찾아 볼 수 없는 자신의 예술 감각을 탓해야했다. 은재 후배한테 부탁해서 박경 레포트나 뜯어와야겠다. 재환이 인상을 쓴 채 교양과목을 추천해준 문제의 후배와 열심히 카톡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옆에서 재환의 팔을 톡톡 두드렸다. 



"저기... 제가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 같아서요. 핸드폰 좀 빌려도 될까요?" 


"아, 여기요."


"감사합니다."



하얀 얼굴을 한 남자가 이어폰을 꼽은 체 길을 걷던 재환을 불러 세웠다. 이 근처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오는 길에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 같다며 당황한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남자는 정말 곤란해 보였다. 재환은 선뜻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처음 보는 남자의 손에 들려주었다. 그것도 패턴까지 손수 풀어서. 



“금방 쓰고 돌려드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연신 인사를 하는 남자에게 재환은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두어 번 저었다. 살풋 웃으며 익숙한 손길로 재빠르게 열한자리 번호를 찍어 넣은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크흠. 재환은 갑작스럽게 길 한 복판에 서 있게 되자 조금 뻘쭘한 생각이 들어 헛기침을 했다. 



예의상 통화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멀뚱하게 서있던 재환은 동그란 눈을 몇 번이고 깜박거리며 상대방이 전화 받기만을 기다리는 남자를 흘끔거렸다. 생긴 건 멀끔하게 생겨서 핸드폰도 잃어버리고 다니네. 역시 사람은 겪어 보고 볼 일이라며 재환은 생각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길 한복판에 서 있는 게 조금 어색한지 재환은 한쪽 귀에만 꼽힌 이어폰을 연신 만지작거렸다. 


여보세요. 응, 어디야? 응. 기다리고 있어.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와. 통화가 연결 되자 금세 안심한 표정을 지은 남자는 연신 웃는 낯으로 보이지도 않는 상대에게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인 뒤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남자는 재환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웃었다. 



"다행이다. 바로 이 근처라고 하네요. 고맙습니다."


남자는 공손하게 재환에게 인사를 건넨 뒤 재환이 걸어오던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다. 작은 체구에 하얀 피부, 키가 크지만 왠지 연약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였다. 데이트라도 있는 건지 빠르게 뛰어가는 남자를 본 재환은 좋을 때라고 생각했다. 저런 샌님같이 생긴 인간도 데이트를 하는데 이렇게 좋은날 나는 레포트나 쓰고 있어야 한다니.. 재환은 그새 열 개가 넘게 쌓인 카톡의 메시지를 확인하며 길을 걸었다. 시발 은재 후배 너는 만나면 가만 안 둔다. 




-




재환은 오랫동안 앉아있느라 뻐근해진 허리를 쭈욱 폈다. 으아, 후배의 도움을 받아 레포트를 메일로 제출한 재환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어폰을 꼽은 체 집으로 향했다. 피곤한데 집에 가서 라면이나 끓여먹고 자야겠다. 


골목길을 걷던 재환이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맞춰 고개를 까닥까닥 흔들었다. 골목길은 어두웠다. 얼핏 보기에도 치안이 좋아 보이는 동네는 아니었다. 학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이었지만 달동네를 개조해서 지은 주택가인지 유난히 오르막길과 좁은 골목이 많았다.


재환의 눈에 골목 한쪽에 주차되어있는 까만 색 SUV에 시선이 갔다. 안이 보이지 않는 검은 창문과 반질반질하게 닦여진 새까만 SUV는 사실 며칠 전부터 재환이 지나다니는 골목 한쪽에 세워져 있었었다. 이 좁은 골목을 어떻게 올라왔는지는 몰라도 덩치큰 차가 골목 한쪽을 가로막고 있으니 길이 꽉 차는 기분에 재환은 슬쩍 인상을 썼다. 


자취를 하면서 매번 보던 풍경에 익숙해진 재환은 아무리 봐도 이 동네 차 같지 않은 차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설마 말로만 듣던 ... 아니겠지. 재환은 잠시 동네 치안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아무래도 의심스럽다 저 차. 몸을 한번 움츠린 재환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한 채 자동차와 최대한 거리를 유지 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쾅!' 



"뭐, 뭐야!"



차의 문이 부서지듯 열리면서 새카만 정장을 입은 세 명의 남자가 차안에서 불쑥 튀어나와 재환을 에워쌌다. 그리고는 재환을 붙잡아 차 안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씨, 씨발놈들아 이거 놔! 약품으로 적셔진 차가운 손수건이 뺨을 스치자 본능적으로 얼굴을 뒤로 뺀 재환이 무릎으로 남자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제법 매서운 가격이 들어갔는지 몸을 움찔하며 숙이던 괴한이 더욱 억센 손길로 재환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 


잡혀가면 끝이다. 


위험한 생각이 들자 재환은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근력을 발휘해 날뛰기 시작했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재환의 턱이 돌아갔다. 중심을 잃은 재환이 몸을 휘청거렸다. 괴한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환의 팔을 뒤에서부터 결박한 뒤 재빠르게 클로로포름이 뭍은 손수건으로 재환의 입과 코를 막았다. 으흡! 역하게 밀려오는 약품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당황한 재환이 숨을 멈추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시발. 엄마 아빠 키워줘서 고마워. 재환은 눈앞에 있는 괴한들의 얼굴을 최대한 기억하려 애쓰는 것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





물에 빠진 것처럼 머릿속이 웅웅거렸다. 부정확한 소음들과 이해할 수 없는 목소리들이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재환은 흐릿한 의식을 치고 올라오는 두통에 불쾌함을 느끼며 인상을 썼다. 머리 아파, 시발. 여기가 어디야. 불쾌한 기분은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자 더욱 심해졌다. 


재환은 정신이 들자마자 득달같이 밀려드는 통증에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깜박였다. 진짜 좆됬네. 목이며 다리, 어깨 할 것 없이 온몸이 통증으로 아우성쳤다. 기절하는 동안 온몸을 두드려 맞기라도 한 건지 안 아픈 구석이 없었다. 이게 무슨 개 같은 상황이야... 의자 뒤로 묶인 양팔은 이미 감각이 없는 상태였다. 재환은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질린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이며 이를 악물었다. 


분명 집을 가는 길이었는데. 약 기운을 털어내려 강아지처럼 머리를 흔들던 재환은 눈을 내리깐 체 곰곰이 몇 시간 전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곱씹었다.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갑자기 차 안에서 괴한들이 튀어나왔고 조폭같이 생긴 놈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을 상대로 어설픈 주먹을 내지르다 얻어 맞은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재환은 그제야 입안을 맴도는 비릿한 혈향에 낮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두툼한 안대가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재환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몇 번이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정신만 차리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산다고 했는데. 그나마 잡혀온 곳이 밝은 공간인 듯 답답하게 가려진 시야 틈새로 가늘게 새어 나오는 빛이 보였다. 


하, 시발... 마약. 조직. 장기밀매. 생각 없이 봤었던 뉴스의 기사의 조악한 제목들이 재환의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싸이코패스. 토막살인. 최악에 최악을 거듭하는 상상이 죽음에 다다르자 재환은 밀려오는 공포감에 물에 건져진 금붕어처럼 숨을 헐떡였다. 



'똑똑."



공황상태에 빠져있던 재환은 갑자기 들려온 노크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거칠게 고개를 틀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 금방이라도 펄떡펄떡 뛰어대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에 재환은 입술을 깨물었다. 똑똑, 또 다시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뭐 하자는 거지? 재환이 입을 꾹 다물고 소리가 나는 곳을 노려보았다. 똑똑. 세 번째 노크였다. 한 번 더 문을 두드린다. 재환은 잠시 고민하다 누구야. 하고 대답했다.



'똑똑.'



이게 지금 장난하나. 재환은 문밖의 납치범이 장기밀매나 마약조직은 아니라고 단정했다. 장기밀매가 목적이었다면 재환은 정신이 돌아오기도 전에 지금쯤 사지가 조각조각 분리되어 남산 산기슭 한구석에 파묻혀 있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뼈와 살이 분리돼서……. 아니, 아니.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말아야지. 존나 무섭게. 그렇다면 사이코나 또라이, 아니면 미친놈이라는 뜻인데. 이렇든 저렇든 지금 상황이 개 같은 건 변함이 없었다. 



"시발! 누구냐고!" 


재환은 묶여있는 팔을 풀어내기 위해 의자가 들썩거릴 정도로 거칠게 몸을 비틀었다. 밧줄에 팔목이 쓸려 피가 베여 나올 정도로 무식한 움직임이었다. 재환의 몸부림을 버텨내지 못한 의자가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쿠당탕! 서늘한 시멘트 바닥에 그대로 어깨를 들이받은 재환은 뼈가 어긋나는 듯 한 고통에 이를 악물고 신음했다. 



"아! 어, 어떡해. 괜찮으세요?!"


재환이 바닥으로 넘어지면서 낸 소음을 들은 남자가 문을 거칠게 열고 달려 들어왔다. 아! 어, 어떡하지? 잠시 만요. 아, 피, 피나요. 흑... 아, 어쩌지. 여기요! 여기요! 볼품없이 의자와 함께 바닥을 나뒹구는 재환을 본 남자는 울먹거리며 재환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살갗이 벗겨진 손목을 타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넘어질 때 받은 충격이 컸던 탓인지 정신 못 차리고 신음하는 재환을 두고 남자는 도움을 요청하듯 소리쳤다. 여기! 여기 좀 도와주세요! 울먹거리며 재환의 안대를 벗긴 남자는 고통에 눈도 뜨지 못한 체 신음하는 재환을 눈앞에 두고 발을 동동 굴렀다. 괜찮아요. 아. 어, 어떡해...남자는 초조한 듯 연신 엄지손톱을 물어뜯었다. 하아, 하아. 뼈가 어긋난 듯 좀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통증이 재환을 덮쳤다. 재환이 눈을 가늘게 뜬 체 숨을 헐떡였다. 우선은 살아서 나가야 했다. 재환은 무릎을 꿇은 체 울먹이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를 향해 절박하게 입을 달싹였다. 



"저기요. 하아, 하아. 이, 이것 좀 풀어주세요."

"그건.... 안 되는데."

"뭐.... 뭐?"



"풀어주면...  도망갈 거잖아요." 





-





두 번째로 눈을 뜬 곳은 새하얀 침대 위였다. 


딱딱한 의자에 묶여있던 것에 비하면 나은 처사임은 분명했지만 재환은 왠지 더욱 참담한 기분이 들어 이를 악물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으려던 재환은 자신의 손목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사슬을 발견하고는 눈을 부릅떴다. 

  

벗겨진 셔츠대신 왼쪽 어깨와 가슴, 팔꿈치까지 단단한 붕대가 둘러져 있었다. 넘어지면서 호되게 부딪힌 모양인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재환은 마취제 때문에 감각마저 무딘 왼쪽 팔을 찬찬히 움직이면서 팔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이 부러지지는 않을 것 같아 재환은 조금은 안심했다. 


몸이 성하지 못한 이런 상황은 정말 최악이었다. 차라리 전부 꿈이었으면. 통증이 너무 심해서 정신을 잃은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재환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흐릿한 의식 속에서 울먹이며 자신을 내려다보면 말간 얼굴을 기억해 내고는 번쩍 눈을 떴다. 


분명 그 새끼가 범인이었을 텐데!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범인의 얼굴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듯 재환이 초조한 얼굴을 했다. 하루 사이 두 번이나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재환의 기억은 조각난 퍼즐처럼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있었다. 

 

 

'똑똑.'

 

 

 

엉거주춤 상체를 일으켜 침대머리맡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던 재환은 또다시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 또 해보시겠다. 재환은 노크소리에 노이로제가 생길 것 같은 표정으로 문을 노려보았다. 문밖의 저 새끼는 또라이가 틀림없다. 자신을 납치하고 다친 자신의 어깨를 치료한 뒤 침대 위에 묶어놓는 또라이. 재환은 이를 갈며 문을 향해 낮게 소리쳤다. 

들어와. 

 

끼이익- 녹이 슨 나무문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너 이 새끼. 네놈 면상은 내가 죽을 때까지 기억한다. 재환은 조금씩 열리는 문을 찢어 죽일 것 같은 눈빛으로 노려봤다. 기분 나쁜 소음을 내며 느리게 열리던 문틈 사이로 작은 머리통이 불쑥 들어왔다. 방안으로 빼꼼하게 고개를 내민 남자는 침대 위에 불편하게 앉은 재환을 확인하고는 친근하게 웃으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일어났어요? 그의 두 손에는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죽과 정갈한 마른반찬 두어 개가 담긴 쟁반이 들려 있었다. 연신 웃는 낯으로 재환에게 조근조근 말을 걸며 다가온 남자는 침대 옆 테이블에 쟁반을 가지런하게 올려놓은 뒤 손을 뻗어 재환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탁, 성하지 않은 왼팔로 남자의 손을 매섭게 쳐낸 재환은 남자의 손목을 강하게 움켜쥔 체 그를 노려봤다. 누구야 너.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야. 

  

손목이 잡힌 남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가 반달모양으로 곱게 휘었다. 재환에게 화사하게 웃어준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잡히지 않은 반대 손을 재환의 이마에 얹은 체 말을 이었다. 아- 정말 다행이다. 열은 내려서, 어젯밤에 열이 꽤 올랐었어요. 뼈가 부러진 건 아닌데 타박상이 너무 심해서 근육 손상도 의심했었는데. 병원에 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머리는 좀 어때요? 어지럽지는 않아요? 

  

 

"너 뭐야."


"저 기억 안 나세요? 몇 일전에 핸드폰 빌려주셨잖아요." 

 

 

제 이름은 홍빈이라고 해요. 이홍빈. 


남자는 재환에게 잡히지 않은 손으로 전화기 모양을 만들어 입가에 가져다 대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어금니를 꽉 깨문 재환이 분노에찬 얼굴로 그를 노려보자 남자는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손 좀 놔주시면 안될까요? 조금 아픈데... 그리고 재환씨.

 


"손이 떨리고 있어요." 

  

홍빈은 약한 떨림이 전해지는 재환의 손등을 자신의 손으로 부드럽게 덮었다. 재환은 손가락 뼈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홍빈의 팔목을 세게 잡았다. 위협적인 행동에 팔목이 저려왔지만 홍빈은 입가에 띤 미소를 잃지 않았다. 놀라서 공포에 떨고 있는 가녀린 짐승에겐 호의를 베풀어줄 필요가 있으니까.  홍빈이 천천히 힘을 주어 재환의 손을 잡아 내리자 손목이 비틀린 재환이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미 부상을 당해 온전하지 못한 어깨에 무리가 오는 듯 재환이 거칠게 욕을 내뱉었다. 

  

 

“놔!” 

 

 

분을 이기지 못한 재환이 사슬이 묶여있는 반대쪽 팔을 거칠게 휘둘렀다. 침대 헤드와 연결된 쇠사슬이 끊어질듯 당겨졌다. 당장이라도 홍빈의 얼굴에 주먹을 내지를 듯 휘두른 팔은 사슬의 길이 때문에 홍빈의 코앞에서 멈추어 섰다. 

 

눈을 크게 뜬 홍빈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사라졌다. 지옥 같은 정적이 흘렀다. 미동 없이 재환의 얼굴과 다시금 피가 베여 나오는 손목의 붕대를 번갈아 보던 홍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커헉. 큭. 너, 이 새...끼... 홍빈이 재환의 손을 가볍게 제압한 뒤 팔에 체중을 실어 재환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재환씨. 폭력은 나쁜 거예요. 


홍빈이 무표정한 얼굴로 재환을 내려다보며 읊조렸다. 

그런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나 하는 저속한 짓이에요. 내가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들지 말아요. 아주. 홍빈은 침대를 들썩이며 반항하는 재환이 산소 부족으로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 할 때까지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체중으로 재환을 내리눌렀다. 

  

아주 불쾌하니까. 

 

“하아. 하아.”

 

마치 격렬한 운동이라도 끝마친 듯 홍빈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흘렀다. 덩치가 큰 재환을 제압하는 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홍빈은 가픈 숨을 내쉬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기절한 듯 미동없는 재환의 목덜미가 온통 붉었다. 홍빈은 재환의 모습을 찬찬히 눈으로 훑다가 조심스럽게 재환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눈을 감자 미약하지만 확실하게 피부 아래에서 뛰고 있는 심박동이 느껴졌다. 홍빈은 규칙적이고도 낯선 그 감각에 입 꼬리를 올려 작게 웃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숨을 고르던 홍빈이 무엇인가 생각난 듯 뒷주머니에 있던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저에요. 부탁했던 물건 지금 가져와 주세요.”



홍빈이 물건이라고 칭한 것들은 의외로 사소한 것들이었다. 사정 방지링과 약간의 흥분제. 기절해있는 재환의 몸에 직접 흥분제를 주사한 홍빈은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도 발기하는 재환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사정 방지링까지 채우는 세팅을 모두 마쳤다. 


다 쓴 주사기를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우겨넣은 홍빈은 침대 맡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그것들을 사소한 물건이라 칭하는 자신의 정신 상태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홍빈은 벌써부터 약기운이 도는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낮은 신음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재환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렴 어떠랴, 제정신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게 더 어려운 요즘 세상인 것을. 






-





재환은 극심한 갈증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신체적 욕구에 의식이 강제로 돌아왔다고 하는 게 좀 더 옳은 표현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숨을 헐떡이며 잠에서 깬 재환은 자신의 물건을 입안에 담고 있는 동그란 머리통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꿈인가..? 상황파악을 하기도 전에 육체의 신호가 빠르게 재환을 잠식해온다. 식은땀까지 흘리며 괴로워하는 재환을 가만히 바라본 홍빈이 손끝으로 재환의 페니스를 짓누르며 말했다.



“암페타민계열의 각성제에 최음제를 섞은 약이에요. 흥분상태가 지속되어서 좀 괴로울거에요.”


점심 메뉴 읊듯 홍빈의 목소리가 지극히 일상적이었기에 재환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그저 멍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약...약이라고? 재환은 자신이 무의식중에 느꼈던 타는 듯한 갈증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하.. 미친새끼.” 

 

 

한숨 쉬듯 내뱉은 재환의 욕지거리에 홍빈이 눈을 가늘게 떴다. 홍빈은 자신의 감정을 피력하는 대신 묵묵히 재환의 발기한 페니스를 주물렀다. 재환의 악다문 잇새로 숨 가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재환은 핑글핑글 돌아가는 시야 때문에 어지럼증을 느끼며 숨을 헐떡였다. 


미친 새끼...뭐하는 거야. 재환은 미칠 듯 끓어오르는 성욕을 느끼면서도 눈을 가늘게 뜬 채 홍빈의 행동을 응시했다. 진지한 얼굴로 자신을 흥분시키는 홍빈의 양볼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부끄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제야 재환은 홍빈이 성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것 같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다.



"야... 계속 그렇게 만지기만 할 거야?"


재환이 씩씩대며 말했다. 약 때문에 온몸이 터질 것처럼 달아오른 상황이 아니었다면 재환을 절대로 흥분하지 않았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 만큼 홍빈의 손놀림을 형편없기 그지없었다. 홍빈은 어디를 어떻게 잡아야 흥분하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재환의 물건을 잡아 쥐는 손가락에 힘이 팍 들어가자 재환이 끙 하고 신음을 흘렸다. 홍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젠장. 더 세게 잡아봐."

"...."

"그래, 그리고 천천히.. 그렇게."


재환은 흥분으로 한층 더 낮아져 거칠게 긁히는 목소리로 홍빈에게 지시했다. 홍빈이 입술을 잘게 깨물더니 이내 재환이 시키는 대로 손가락에 힘을 주어 재환의 물건을 잡았다. 재환이 허리를 비틀며 신음을 흘렸다. 더 아래로 그래... 좋아. 



"재환씨 그런데 어차피 사정 못할 텐데..."



조금은 자신감이 붙은 홍빈이 재환의 귀두끝을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처럼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재환이 눈을 번쩍 떴다. 뭐이시발? 홍빈이 프리컴으로 젖어 미끈거리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금속 링을 느릿하게 굴렸다. 아마 안 될 텐데 .. 홍빈이 중얼거리며 손끝으로 튕기듯 재환의 물건을 건들이자 그제야 자신의 중심을 뻐근하게 파고들어오는 링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욕을 짓씹듯 내뱉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누구 고자 만들려고 작정했어?!?!"

"그거야 재환씨가 너무 폭력적으로..."

"빨리 빼. 이거 존나 터질 것 같으니까. "

"안돼요."



역시 금방 사정감이 몰려들어 얼굴마저 새빨갛게 달아오른 재환이 이가 갈릴정도로 어금니를 깨물었다. 드디어 재환의 페니스에서 손을 뗀 홍빈이 침대위에서 벌떡 일어서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리곤 사지가 묶여 헐떡거리는 재환의 얼굴을 가만히 보더니 입술을 깨물며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 내리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듯 눈을 내리깔고 일정한 속도로 셔츠며 바지에 속옷까지 벗어내는 행동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리고 탁자위에 놓아둔 젤을 집어 들고 손에 짜내기 시작했다. 


재환은 다시금 약기운이 몰려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숨소리마저 자극이 되어 귓가에 떨어진다. 뽀얀 홍빈의 어깨를 흐린 눈으로 멍하게 응시하던 재환의 머리에 순간 시뻘건 경계경보가 왕왕 울렸다. 


똑같은 남자의 맨몸만 봐도 흥분이 되다니. 미친 마약 존나 강한가봐... 숨을 고르기 위해 눈을 감고 있자 이내 침대가 출렁이더니 재환의 허리 위가 묵직해졌다. 뭐, 뭐야 이건. 재환이 눈을 번쩍 뜨자 알몸으로 재환의 위에 올라타려던 홍빈이 냉큼 재환의 눈을 가렸다. 



"거 눈좀 감고 계시면 안 돼요?"



쩍 굳어 대답이 없는 재환의 위에 올라탄 홍빈이 말했다. 적셔야 된다고 했거든요. 낯 뜨거운 말을 높낮이 없는 톤으로 조근조근 내뱉은 홍빈이 재환의 어깨위에 한쪽 손을 얹은체 반대 손을 자신의 허벅지 뒤로 가져갔다. 차가운 젤이 연약한 피부에 닿자 홍빈이 얼굴을 찌푸렸다. 서툰 손놀림에 젤이 손을 타고 흘러내려 재환의 복근위에 후두둑 떨어졌다. 


미간을 지나가는 맥박이 터질듯 머릿속을 울려댄다. 홍빈의 나신을 눈으로 훑은 재환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존나 하얗네. 보다 못한 홍빈이 인상을 쓰며 어깨에 얹었던 손으로 재환의 눈을 덮었다. 침묵이 흐르고 두 사람의 숨소리만 방안을 불규칙하게 울린다. 억지로 자신의 손가락 두어개를 우겨넣는데 성공한 홍빈이 허리를 떨며 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허리가 저절로 꺾이는 기분에 홍빈은 허벅지에 힘을 줬다. 차갑게 식어가는 홍빈의 손바닥 위로 긴 재환의 속눈썹이 잘게 떨렸다. 


"간지러워요."


홍빈이 손바닥으로 재환의 눈두덩이를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재환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가느다란 속눈썹이 홍빈의 손바닥을 스치듯 간질였다. 미약한 움직임이었지만 그 감각이 못내 자극적이었던 홍빈이 숨소리를 참느라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홍빈의 행동에 재환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재환은 생각했다. 자신을 보쌈해온 홍빈의 의도는 알 수 없었지만 알아서 다리를 벌리겠다는데 피할 남자는 없었다. 좆같은 상황에 닥쳐있더라도. 재환은 주변에서 흔하게 듣는 편견의 벽을 넘지 못하는 나약한 이성에 잠시 조소했다. 이성보다는 몸이 먼저 반응하는 본능에 충실한 짐승이 아니던가. 

 


“풀어줘.”

“........왜요.”

“풀어달라고 시발. 섹스 해본 적 없지?”


도망 안가니까 풀어줘. 

지금 내 아들내미가 터지려고 하잖아. 


“있어요.”

“뭐?”

“섹스. 해본 적 있다고.”


고개를 숙인 체 스스로에게 주는 미미한 고통에 입술을 깨물던 홍빈의 얼굴이 고개를 들어 흥분으로 잔뜩 헐떡대는 재환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아무래도 준비할 때의 표정을 보여주는 건 부끄럽다. 홍빈은 땀에 매끈하게 젖은 재환의 목덜미에 이마를 기댄 체 기어코 손가락 세 개를 자신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앗. 아… 재환의 어깨를 부여잡은 손아귀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재환은 코끝으로 스미는 홍빈의 체취에 뇌를 새하얗게 점멸하는 쾌감이 치밀어 올라 몸서리를 쳤다. 헐떡대는 재환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홍빈은 이내 눈을 내리깔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젤이 체온에 녹아 쿨쩍이는 소리가 질척하게 울렸다. 허벅지를 붙잡고 천천히 하체를 맞닿자 재환이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좀, 빨리 움직여.”

“보채지 좀 말아요. 힘드니까.”

“왜 이렇게 조이는 거야. 젠장.”


재환이 사정감이 끝까지 치미는 듯 마구잡이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앗! 아!  홍빈이 새된 신음을 내뱉으며 버둥거렸다. 올라타 있던 홍빈이 중심을 잃고 재환의 위에 주저앉듯 쓰러졌다. 반쯤 들어갔던 재환의 물건이 단숨에 뿌리 끝까지 밀어 넣어지자 그 충격에 홍빈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체 몸을 떨었다. 



“...흐....”

"후. 미치겠네."

“.....지마.”

“뭐?”



순간 재환의 뒷머리카락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 


뼈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손에 힘을 준 홍빈의 눈가가 온통 붉었다. 아파. 머리카락이 뽑혀 나갈듯한 고통에 재환이 인상을 찌푸렸다. 혀로 바짝 마른입술을 축이던 재환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눈을 꽉 감았다. 제법 표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울음기 번진 눈매와 마주치자 기분이 묘했다. 단정하게 내린 홍빈의 앞머리가 땀에 젖어 이마위에서 흔들렸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이 글의 처음 시작은 코미디였습니다 

근데 이거 취향타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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